골리앗을 잡는 다윗이 올해에도 등장할 수 있을까. 프로와 아마추어를 고루 포함한 86개 팀이 맞붙는 FA컵 대회가 본격적으로 열린다. 유명한 1부리그 팀이 이름 없는 4부리그 팀에 패하고, 젊고 패기 넘치는 대학팀이 노련한 프로팀을 무너뜨리는 이변은 FA컵만의 덕목이다.

K3리그(4부리그) 소속의 화성 FC 선수들이 27일 열린 2019 KEB하나은행 FA컵 3라운드에서 K리그2(2부리그) 안산 그리너스를 상대로 득점 후 기뻐하고 있다. 화성은 이날 3대 2로 승리하며 4라운드(32강)에 진출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하는 2019 KEB하나은행 FA컵 3라운드가 27일로 모두 마쳤다. 3라운드부터 참여한 K리그2(2부리그) 프로팀들은 이날 경쟁을 뚫고 올라온 아마추어들에게 나란히 쓴맛을 봤다. 고종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대전 시티즌은 단국대학교와의 경기에서 연장 접전 끝에 2대 2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3-4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부산 아이파크는 내셔널리그(3부리그)팀인 천안시청축구단에 0대 1로 졌고, 안산 그리너스도 K3리그(4부리그)의 화성 FC에 2대 3으로 무릎을 꿇었다. 상대를 만만히 본 프로들은 쓸쓸히 대회를 마감해야 했지만 겁 없는 아마추어들은 더 높이 날아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17일 열릴 4라운드(32강)부터는 K리그1 구단도 가세해 더욱 치열하고 수준 높은 대결이 펼쳐질 예정이다.

아마추어 꿈의 무대, FA컵

FA컵은 프로가 되고 싶은 아마추어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프로의 문턱을 넘지 못했거나, 내셔널리그의 실업팀에서 뛰다 방출된 이들이 각종 구단과 스카우터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선보일 귀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투지와 정신력, 절실함으로 무장한 하위리그 팀이 여유로운 K리그1·2 팀을 무너뜨리는 장면은 FA컵 대회에서만 볼 수 있는 묘미다.

지난해 FA컵 32강에서 K리그1 상주 상무를 승부차기 끝에 제압한 K3리그 양평 FC 선수단. 양평 FC 제공

지난해 FA컵에서는 새 역사가 쓰였다. 사상 최초로 K3리그 팀이 1부리그 팀을 이긴 기적이 이뤄진 것이다. 상주 상무와 2-2로 비긴 후 승부차기 끝에 16강에 오른 양평 FC가 주인공이었다. 당시 교체 카드를 다 쓴 양평의 선수들은 경기 막판 다리에 쥐가 나 바늘로 종아리를 찔러가며 버틴 끝에 승리를 차지했다. 올 시즌에도 출전한 양평은 3라운드에서 K리그2 디펜딩 챔피언 아산무궁화축구단을 쓰러뜨리며 다시금 반란을 꿈꾸고 있다. 김경범 양평 감독은 28일 “우리보다 약한 팀은 하나도 없다”면서도 “(승리 팀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도전하겠다”라고 했다.

대구 FC 선수들이 지난해 12월 울산 현대와의 FA컵 결승 2차전에서 3대 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확정지은 뒤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환호하고 있다. 시민 구단인 대구는 창단 후 FA컵에서 처음으로 우승하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냈다. 뉴시스

세미프로라 할 수 있는 내셔널리그 실업팀이 프로를 이기는 일은 종종 벌어진다. 2017년 목포시청은 2부리그의 성남 FC를 3대 0으로 완파하고 4강까지 올랐다. 3년 전 해체된 울산 현대미포조선은 2005년 FA컵에서 포항 스틸러스, 전남 드래곤즈 등 1부리그 팀을 연이어 꺾고 결승까지 내달리기도 했다. 비록 전북 현대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지만 아마추어 구단으로서는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반대로 유난히 FA컵에서만 제힘을 못 쓰는 경우도 있다. K리그1에서 6차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2차례 정상에 오른 절대강자 전북은 지난 13여년간 FA컵에서는 한 번도 우승을 못 했다. 최근에는 3년 연속 2부리그의 아산과 부천 FC에 발목 잡히며 8강 이하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빈번한 반란의 제물이 된 셈이다. 전북을 이끌던 최강희 감독은 아산전 패배 후 “이 정도면 FA컵에서 부진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칼레의 기적’… 해외서도 이변의 연속

잉글랜드 내셔널리그(5부리그) 링컨 시티 FC의 선수들이 2016-17시즌 FA컵 번리 FC와의 16강전에서 션 라게트의 득점 후 모여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해외에서도 FA컵은 신데렐라가 탄생하는 무대다. 1871년 창설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축구 대회로 알려진 잉글랜드 FA컵이 대표적이다. 잉글랜드 축구협회 산하 1부~10부의 구단들이 격돌하는 만큼 약팀이 강팀을 깜짝 격파하곤 했다.

2년 전에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건이 벌어졌다. 잉글랜드 내셔널리그(5부리그) 소속 링컨 시티 FC가 프리미어리그(EPL) 번리와의 16강전에서 1대 0으로 승리한 것이다. 5부리그 이하 아마추어팀이 8강에 오른 것은 1914년 퀸즈 파크 레인저스 이후 103년 만이었다.

풋볼리그1(3부리그) 소속 브래드포드 시티의 존 스테드(오른쪽)가 2014-15시즌 FA컵 32강전에서 첼시 FC를 상대로 득점하는 장면. 잉글랜드 축구협회 홈페이지

2014-15시즌에는 세계적 유명세를 자랑하는 EPL 구단들이 32강에서 하위 팀에 패해 연달아 탈락하는 파란도 일어났다. 첼시 FC는 풋볼리그1(3부리그)의 브래드포드 시티를 상대로 2-0으로 앞서다 2대 4 역전패를 당했다. 맨체스터 시티 역시 2부리그 미들즈브러 FC에 0대 2로 졌다.

프랑스의 FA컵은 ‘칼레의 기적’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북부의 작은 항구 도시 칼레에 위치한 4부리그의 칼레 RUFC는 1999-2000시즌 FA컵에서 상위리그 팀을 연파하며 결승전까지 진출, 이변의 대명사가 됐다. 당시 칼레 RUFC는 가게 종업원과 교사, 항만 노동자 등으로 구성된 순수 아마추어팀이었다. 칼레는 1부리그 FC 낭트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들의 축구 열정은 전 세계에 감동을 줬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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