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타깃이던 EU와 일본은 美와 협상 중이고 양보할 카드 있어 한국만 무방비 상태
한·미 FTA 재협상 때 적용 제외 못 박지 못한 것 큰 실책…
미국과 대북 제재 둘러싼 갈등까지 겹치며 상황 급격히 나빠져


미국이 경쟁국은 물론 동맹국과도 서슴없이 벌이는 무역전쟁의 주요 법적 근거는 무역확장법 232조다. 외국산 제품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이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추가 관세를 매기도록 했다. 이 법은 1962년 냉전 당시 공산국가들에 맞서 자유주의국가끼리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제정됐다. 그런데 이젠 미국의 동맹을 ‘잡는’ 수단이 됐다. ‘국가 안보’라는 범주가 워낙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라 미국 산업계가 걸려고 하면 안 걸리는 게 없다.

한국 자동차 업계가 가장 끔찍한 악몽으로 여기는 게 이 조항의 한국 적용 가능성이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관세 폭탄을 맞으면 한국 차 산업은 쑥대밭이 될 것이다. 전체 차 수출의 33%(지난해 81만대)가 미국행이다. 한국 차가 관세 25%를 내면서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품업체를 포함해 수십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친환경·첨단차로의 전환이 늦은데다 국제 경쟁력까지 하락해 휘청대는 자동차 업계에 직격탄이 될 것이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17일 백악관에 제출한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에서 수입산 자동차 및 부품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결론내리고 시정 조치를 권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보고서에 담긴 권고안 이행 여부와 관세 부과 방식을 오는 5월 17일까지 결정해야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한국이 캐나다, 멕시코와 함께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였다. 미 자동차연구센터도 관세 부과 대상 시나리오에서 한국산을 제외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했다. 통상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이 주 타깃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당초 미국이 232조를 꺼낸 목적은 캐나다와 멕시코를 손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으로 대체하면서 ‘232조 적용’에서 사실상 벗어났다. USMCA에 미국이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새로운 원산지 규정을 충족한 자동차는 260만대까지 관세를 면제받는다는 조항을 넣었다.

유럽연합(EU)은 되받아칠 결정적 한 방이 있다. EU는 미국이 유럽산 차에 232조를 적용하면 신속하게 무역 보복에 나서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미국이 최대 교역국인 EU와 전면전을 벌이기는 쉽지 않다. 여기다 EU는 미국과 진행 중인 무역 협상에서 양보안을 제시할 수 있다.

투자와 서비스가 포함된 미·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압박을 받아온 일본은 상품 무역에 국한하는 물품무역협정(TAG)을 미국과 맺기로 최근 합의했다. 트럼프의 강경한 입장을 아는 일본은 자동차 부문에서 상당한 양보를 할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요약하면 유력한 타깃으로 여겨지던 EU와 일본은 미국에 양보할 카드를 갖고 있고, 캐나다와 멕시코는 232조 대상에서 제외됐다. 결국 한국만 무방비로 트럼프의 변덕에 노출된 형국이다. 지난해 초 한·미 FTA 재개정 때 이 문제에 대한 아무런 보장을 받지 못한 게 뼈아프다. 협상에 참여했던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들도 “아쉬운 대목”이라고 한다. 통상 전문가들은 “명백한 실책”이라고 한다. 당시 미국무역대표부(USTR) 등의 보고서에서 철강 다음에 232조가 적용될 품목은 자동차라는 구절이 여러 차례 나왔는데 아무런 방어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미 FTA 재협상 책임자는 김현종 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다.

이런 가운데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남북 경협을 둘러싼 청와대와 백악관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것은 실로 걱정스럽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여론을 거스르면서 한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등을 계속 추진한다면 미국도 강력한 경고의 수단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주목되는 게 최근 미국이 대(對)이란 제재 예외국 지위를 한국에 부여하지 않을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예외국 지위를 자동 연장해주겠다는 약속을 뒤집었다. 한국은 북한의 위협을 막는 ‘특별한’우방이라는 인식이 트럼프 행정부에는 없다는 걸 다시 보여준다.

일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산 차에 대해 232조 적용을 아예 포기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설득력이 낮다. 트럼프는 평소 “자동차는 철강과 다르다”고 여러 차례 말해 왔다. 이를 뒤집기 쉽지 않다. 그는 또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다. 미국 산업계가 수입차로 인해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호소하는데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가 칼을 휘두르지도 않고 칼집에 도로 넣을 가능성은 낮다. 통상 전문가들은 마지막 희망이 정상외교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여러 경로를 통해 트럼프에게 한국 차에 대한 232조 적용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북한 문제에 올인(다걸기)한 문 대통령이 이를 해낼 것인가.

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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