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철 (6) “재미없고 지루해요”… 5명 중 3명 반 옮겨

경험삼아 ‘노인과 바다’로 수업… 처음엔 교재가 재미없나 착각 강의법에 문제 있음 알고 고민

정철 이사장이 영어강사로 본격 활동하던 시절 서울의 한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나는 땜빵 영어강사 제안을 받아들였다. 바쁜 일이 없었던 데다가 경험도 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초 독해’ 수업을 맡았는데, 교재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골랐다. 일주일 이상 밤을 새우며 나름 열심히 수업준비를 했다.





드디어 첫 시간. 교실에 들어가보니 아리따운 여대생 5명이 앉아 있었다. 학생들을 보자 내 가슴도 뛰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내가 선생인 줄 몰랐다. 청소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한 학생이 “선생님은 언제 오시느냐”고 물었다. “내가 선생이에요” 하자 학생들은 비슷한 연배의 나이 어린 선생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재빨리 응수했다.

“내가 겉보기보다는 나이가 많아요. 경력도 풍부하고요.” 허풍이었다.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 방식은 교재를 읽어가면서 문법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칠판에 예문도 잔뜩 써가면서 신나게 강의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그런데 사흘째부터 수강생 3명이 안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슨 바쁜 일이 있나 보다 생각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앉아 있는 학생은 달랑 2명뿐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저… 혹시 나머지 세 학생은 무슨 일이 있나요.” “아, 그게요. 실은… 걔네들은 다른 반으로 옮겼어요.”

가슴이 철렁했다. “아니, 왜요.” “그게요.… 강의가 재미없고 지루하대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왜 안 가고 계속 나와요?” “솔직히 말해도 되나요. 저… 우리까지 가면… 선생님이 너무 불쌍해질 것 같아서요. 그래서 우리 둘이 희생해서 남은 거예요. 그런데 기왕 말이 나왔으니 저희도 가면 안 될까요.”

깜짝 놀랐다. 나는 여기서 물러나면 정씨 가문의 자존심에 큰 오점을 남길 것 같았다. 그래서 정색하고 이렇게 말했다. “에이, 그렇게 재미가 없었으면 진작 말을 좀 해주지 그랬어요. 나는 재미있게 듣고 있는 줄 알았잖아요. 그러면 내가 이제부터 수업방법을 재미있게 바꿔 볼 테니까 일주일만 더 들어봐요. 그래도 재미없으면 내가 학원비를 환급해줄게요.”

일단 이렇게 큰소리를 쳐 놓고 학생들을 보냈다. 그런데 솔직히 고민됐다. ‘아니, 도대체 왜 내 강의가 재미가 없고 영양가도 없다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재 때문인 것 같았다. ‘노인과 바다’는 솔직히 재미 없는 내용이었다. 줄거리를 간단히 얘기하면 그냥 한 노인이 배를 타고 계속 바다로 나갔다가 큰 고기를 잡아 돌아오던 중 상어를 만나 고기 살은 다 뜯기고 뼈만 남았다는 이야기였다. 중반까지는 정말 지루한 내용의 연속이었다.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왜 이렇게 재미없는 책을 택했을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있고 재미있고 짜릿한 러브 스토리도 많은데 왜 이걸 골랐을까 싶었다. 책장을 넘기며 다시 읽어봤다. 헤밍웨이의 문장은 참 좋았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나의 강의법이었다. 중·고교나 학원에 다닐 때 선생님들에게 배운 대로 가르친 것이다. 문장 하나를 써놓고 분석하면서 수식이 어쩌고저쩌고했으니 학생들이 실망한 것이다. 두 명의 학생도 비슷한 피드백을 줬다. 대학생이 돼 멋있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 왔는데, 고등학교 때 배운 식으로 영어를 대하니 싫다고 했다.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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