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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진창수] ‘포스트 아베’만 기다릴 건가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맞게 국제관계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고들 말한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면서 현존 국제질서를 유지해오던 미국의 이미지가 정반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유경제보다 보호무역을 강조하는 그의 정책은 기존 질서의 파괴에 가까워 동맹 관계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 한·일 관계 또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겪고 있다.

우선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기둥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양국은 전통적인 쟁점(독도, 야스쿠니, 역사교과서 등)보다는 대법원의 징용공 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감정싸움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격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사법부의 판결이 1965년 조약을 붕괴시킨다고 주장하면서 대항 조치에 열을 내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한·일 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갈등 해소를 아예 포기한 듯한 자세를 보여 왔다. 그 결과 한·일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양국 내에서 확대되면서 우호 협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 1998년 김대중 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그리고 2010년 간 나오토 담화로 한·일 관계를 발전시킨 것이 무색할 정도다. 지금까지는 1965년 기본조약을 바탕으로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양국 관계를 근본적으로 흔들지는 않았다. 매년 2월 말 ‘다케시마의 날’에서 시작하여 일본의 검정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한국민을 분노케 하였지만, 한·일이 우호 협력을 해야 한다는 근간은 남아 있었다. 최근의 갈등은 1965년 기본조약의 근본적인 전제를 바꾸고자 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한·미·일 안보 협력도 변화를 겪고 있다. 3국 공조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탱하기 위한 전제였고, 북한 문제가 심각할 때마다 중요성은 더욱 강조돼 왔다. 최근 한·미 동맹에도 의문의 목소리가 생길 만큼 안보환경이 급변하면서 한·미·일 공조에 균열이 생겼다. 문재인정부 들어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느라 한·미·일 공조에 대한 적극적인 목소리는 사라졌다. 일본과의 안보협력 또한 한국 내 반일 분위기에 편승해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조차 한·일 안보협력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 한·일의 독자적 안보 행보가 손쉬워졌다. 정부는 ‘신냉전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어 한·미·일 공조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면이 있다. 아베 정부도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을 배제한 동아시아 질서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북핵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공조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현실에선 점차 약화되고 있다.

이처럼 한·일 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한국은 무관심하다. 양국 국민의 교류가 여전히 활발하다며 한·일 관계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경제는 정치와 다르게 봐야 한다”며 교류 확대의 뜻을 비쳤다. 그렇지만 정작 징용공 문제로 결과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한·일 관계는 악화되어 많은 국민이 걱정하고 있다. 게다가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원인을 일본의 방해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로 일본 불신이 강하다. 일부 정부 관계자들도 아베가 있는 동안은 한·일관계 개선이 어렵다고 말한다. 또한 일본의 혐한 분위기는 도를 지나쳐 ‘코리아 패싱’에서 ‘로스트 코리아(실종된 한국)’까지 말할 정도가 됐다. 미국이 1950년 애치슨 라인을 설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더 이상 전략적인 가치가 없기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한·일 관계가 정상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한·일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에 한국이 전략적인 로드맵을 준비하면서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기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통해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형성하자고 주장하지만, 주변국가 특히 일본에 대해서만은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일본을 방해자로 치부하고 과거 청산의 대상으로만 본다면 한국 외교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일본과의 전략적인 협력을 복원해야 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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