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지지층 비판 목소리는 신뢰 위기의 신호탄이고 좌우 양쪽서 비판 쏟아지면 신뢰 위기 본격화된다
그 경계선에 있는 文정부, 인사 실패 담백하게 사과하고 전 정권과 다른 모습 보여야 반전의 미학 꾀할 수 있다


결국 예상대로였다. 장관 후보자 두 명이 낙마했다. 여권에서는 이 정도면 정치적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봉합은 봉합일 뿐이다. 깊은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는 것으로는 문제가 치유되지 않는다. ‘신뢰의 위기’라는 내상은 계속 곪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의 모든 정권이 ‘신뢰의 위기’를 경험했다. 그 신뢰의 위기는 곧 정권의 위기로 바뀌곤 했다. 큰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하고, 국정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일이 반복됐다. 모든 일은 하나의 원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뢰의 위기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대체로 정책 실패로 인한 무능과 권력의 오만이 빚어내는 합성물이다. 이 정권에서도 의도와 결과가 빗나가는 각 분야의 ‘정책 오조준과 실패’가 무능의 징표가 되고 있다. 이는 불신의 기름밭이다. 여기에 지나친 ‘전 정권 탓’과 ‘내로남불’이 잔불을 붙인다. 이 잔불을 큰불로 만들 위험이 제일 큰 요인이 인사와 비리다. 이미 전 정권들도 혀를 내두를 만한 코드 인사와 낙하산 인사로 무언가 ‘다름’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기대를 접고 있다. 거기에 원칙이 실종된 이번 인사가 포개지면서 좌우에서 비판이 쏟아진다.

신뢰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등은 이미 켜진 셈이다. 신뢰의 위기는 정치적 반대층만 비판한다고 해서 오지는 않는다. 중도층이 움직이고 심지어 지지층마저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신호탄이다. 물론 지지층의 비판은 왜 ‘촛불 혁명 부채’를 제대로 갚지 않느냐는 식의 역방향일 수 있다. 하지만 좌우 양쪽에서 비판이 쏟아질 때 신뢰의 위기는 본격화된다. 지금은 그 경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를 위협받고 여당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 것이 그 좌표를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으로 권력이 신뢰를 얻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중국 정치사상을 빌려 말하자면 ‘유가’ 식과 ‘법가’ 식이다. 유가의 방법이란 보편적인 도덕 감정과 원칙에 충실하게 행동함으로써 신뢰를 얻는 덕치다. 법가의 방법이란 진(秦)의 상앙이 그랬던 것처럼 국가가 한번 세운 기준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준수해서 국민이 믿도록 하는 ‘계율의 통치’다. 이 두 방법은 서양에서도 비슷하게 강조된다. 정치사상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정치학 3권’에서 국민이 믿고 따르는 좋은 리더십의 조건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도덕적 탁월함과 실천적 지혜로 이루어진 덕성(역량)이고 다른 하나는 법의 지배를 통한 공정함의 실현이다. 다만 동양의 법치가 ‘계율’의 무서움에 대한 두려움을 동원한 통치 수단이었다면, 서양의 법치는 ‘권리의 보호’를 앞세워 심판의 역할을 자임한 통치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번 인사 파동은 ‘덕치’와 ‘법치’의 결핍, 또는 덕성과 공정함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책 실패와 연계된 인사의 협소함에 대한 불만도 쌓여 있는 데다 국민들의 부아를 돋게 만든 것은 이 나라 장관 후보자들의 도덕적 수준이었다. 막말과 표변, 지역구에서 사적 이익 챙기기, 투기를 때려잡겠다는 정권을 무색하게 하는 부동산 투자(?) 실력, 인사청문회 날 하루만 넘기면 된다는 비굴한 자세, 쟁점을 돌리기 위한 무리한 정치적 엎어치기 등 보여줄 것은 다 보여주었다. 이 나라 최고 공직 후보자들이 유가에서 말하는 도덕 감정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羞惡之心·수오지심)이 있는지를 의심받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 한편 스스로 내걸었던 인사의 7대 기준들이 너덜너덜해졌다. 대통령 공약이었던 인사 5대 원칙이 초기에 흔들리자 세부 기준을 완화하면서 마지노선으로 마련한 것이 7대 기준이었다. 이 기준이 유명무실해질 정도로 위반 사항이 수두룩하다는 것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언론이 지적하고 있다. 신뢰를 얻으려면 스스로 세운 기준은 반드시 지키라는 법가의 가르침이나 기준의 자의적 적용이 가장 큰 독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이 모두 무망해졌다.

그럼에도 정치는 ‘반전의 미학’을 늘 예비한다.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투성을 뛰어넘는 발상과 행동에서 나온다.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인사에 대해 담백하게 사과하고, 탕평과 능력 위주로 인사 틀을 바꿀 것을 선언하고, 책임자들을 경질하면서 개각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결단을 내리면 반전을 기할 수 있다. ‘아 그래도 이 정권은 잘못을 시정할 줄 아는 면에서 과거와 다르다’는 미덕이야말로 국민이 보고 싶은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상책이라면 거래하듯이 두 명 낙마로 끝내려는 것은 하책이다. 당장 야당과 언론은 정치적 뒷배 없는 관료와 학자만 꼬리 잘랐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아무런 감동도 없이 신뢰의 상실은 그대로 남는다. 신뢰의 위기, 그 경계에 있음을 직시한다면 ‘반전의 미학’을 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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