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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예순 살 청춘’의 조건


신록 청춘 동요가 그리운 새봄 추억 되새김질만 할 수는 없어
울만의 시 ‘청춘’서 해답 찾길… 오늘 하루 멋지게 살면 행복


안도현의 신간 시집에서 봄을 만났다. ‘기어코 좋은 꽃으로 피어야겠다/ 우리는 봉선화 조선 싸리나무 울 밑에 사는/ 모양이 서툴러서 서러운 꽃/ 이 땅 겹겹 어둠 제일 먼저 구멍 뚫고/ 우리 봉선화 푸르른 밤 건널 때/ 흉한 역적 폭풍우도 맑게 잠재우고/ 솟을 꽃이겠다/ 터질 꽃이겠다/ 세상 짓이길 꽃이겠다.’(‘봉선화’)

안도현이, 봄꽃이, 아니 직장 앞마당격인 여의도공원이 나를 부른다. 조용히 벤치에 앉으면 신록의 봄이 차고 넘치도록 좋다. 능수버들이 연두에서 초록을 거쳐 진녹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이 유쾌하다. 신록은 새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 신록을 바라보면 살아 있음의 눈부심이 황홀하다. 이파리 하나하나가 싱그럽다. 그래서 나는 매년 이맘때면 이양하의 ‘신록예찬’을 찾아 읽는다.

‘신록을 대하고 앉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 나의 모든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말하자면 나의 흉중(胸中)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眼前)에도 신록이다.’

고1 땐가 국어책에 나온 수필이다. 자연의 신비를 찬미하며 직관적 상상력으로 인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이겠다. 이토록 좋은 글을 그때는 그리 좋은 줄도 몰랐다. 국어 선생님이 작품을 감상하도록 가르치지 않고 시험 대비로 문장을 분석하거나 자음접변, 구개음화를 익히게 했으니 그럴 수밖에. 내가 만약 선생님이라면 ‘공원에 나가 10번씩 읽고 오기’ 숙제를 내고 싶다고 상상한 적이 있다.

‘청춘예찬’도 이런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과 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끊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민태원이 1929년에 쓴 수필이다. 피 끓는 정열, 원대한 이상, 건강한 육체를 주제로 청춘을 찬미하고 격려한 작품. 환갑 바라보는 나이에 읽어도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 이 역시 학창시절엔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 이 정도 명문이라면 책상 앞에 붙여놓고 매일같이 낭독해도 좋았을 것을….

청춘, 그야말로 가슴 뛰게 하는 낱말이다. 나이로 치면 몇 살쯤일까. 청춘의 사전적 의미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 시절’이다. 어느새 나도 나이 들었구나 하는 걸 처음 느낀 건 정확히 서른여섯 살 때다. 초겨울 한파가 몰아친 수능시험장 입구에서 고교생들이 웃통 벗어던진 채 고함지르며 선배들을 응원하던 날.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지금 나는 몇 살이지?” 내 나이 정확히 두 배임을 확인하곤 “내 청춘은 어디로 갔지?”라고 되뇌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흐르는 세월은 단 1초의 쉼조차 없는 법이다.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나이 들어 청춘이 좋은 것은 향수나 그리움의 표현이기 때문일 게다. 되돌아갈 수 없음에서 찾는 위안의 도피처. 동요가 좋은 것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요즘 나는 출근길 승용차에서 추억의 동요, 혹은 가곡 듣는 걸 즐긴다. 익숙해서 그런지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진다.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활짝 폈네, 하아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쌩긋,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과수원길’),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기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마음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동무생각’). 아카시아 흐드러지고, 백합 만발한 고향 마을이 그리워진다. 함께 뛰놀던 옛 동무들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신록도 좋고, 청춘도 좋고, 동요 또한 좋다. 하지만 나이 좀 들었다고 추억 되새김질만 해서야 되겠는가. 나이 자랑이나 하고 살순 없지. 역시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에서 답을 찾아보련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내가 좋아하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전장에서 즐겨 읊었다는 시라서 더 진하게 와 닿는다. ‘스무 살 청춘’은 어차피 떠나간 배, 그나마 ‘예순 살 청춘’이 남아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명색이 청춘인지라 미래를 말하는 게 좋겠지만 쉽지 않을 듯하다. 최소한 과거에 연연하진 말아야겠다. 어쭙잖은 이력 자랑하거나 지나간 세월 원망한들 누가 귀 기울여줄까.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정성을 다해 꾸려나가다 보면 소소한 행복이라도 찾아오지 않을까. ‘카르페 디엠, 오늘 하루 멋지게 사는 사람.’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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