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年號)를 처음 사용한 중국 황제는 한무제다. BC 140년 유학자 동중서의 건의로 건원(建元)이란 연호를 사용하면서부터다. 한무제는 주변국에도 자신의 연호를 쓰도록 강요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영락(永樂)이란 연호를 사용한 게 시초다. 이후 신라, 고려, 후고구려, 발해 등 여러 왕조에서 독자 연호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대부분 중국 연호를 그대로 썼다.

조선은 고종 이전까지 명·청의 연호를 차용하다 고종 31년(1894년)이 돼서야 개국(開國)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건양, 광무를 거쳐 순종 때 융희를 끝으로 왕조의 연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고종은 여러 개의 연호를 썼으나 일세일원(一世一元)이 원칙이다. 원나라 때까지는 나라에 큰 길흉사가 있을 때 연호를 바꾸는 개원(改元)이 있었으나 명나라 이후 한 임금이 하나의 연호만 썼다. 구한말 자주 바뀐 연호에서 쇠락해가는 비운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연호를 처음 사용한 중국도 청의 멸망과 함께 더 이상 왕조식 연호를 쓰지 않는다.

일본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왕조식 연호를 쓰는 나라다. 현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는 ‘헤이세이(平成)’다. 1989년 즉위했으니 올해는 헤이세이 31년이다. 다음 달 1일 헤이세이 시대가 저물고 ‘레이와(令和)’ 시대의 막이 열린다. 일본 각의는 고령을 이유로 퇴위하는 아키히토(85) 일왕의 뒤를 잇는 나루히토(59) 왕세자 시대에 사용할 새 연호를 레이와로 결정했다.

이전까지 일본 연호는 모두 중국 고전에서 따왔다. 그러나 이번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 ‘만요슈’에서 골랐다. 일본 정부는 새 연호를 발표할 때 출처를 꼭 밝히는데 만요슈의 매화 관련 시가에서 따온 글자가 레이와다. ‘천지, 내외의 평화를 이룬다’는 의미의 헤이세이는 서경 대우모의 ‘지평성천(地平成天)’과 사기 오제본기의 ‘내평외성(內平外成)’에서 차용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레이와의 의미를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서로 모아서 문화를 태어나게 하고 키우자는 뜻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독도·역사교과서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헤이세이 시대가 저물어 간다. 레이와 시대는 두 나라의 아름다운 마음이 합쳐져 일왕도 무시로 한국을 방문하는 한·일 화합의 시대가 되기를 꿈꿔 본다.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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