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철 (8) ‘정철 카세트’로 대박… ‘엄청난 세금’으로 쪽박

‘교실 없는 학원’ 아이디어… 사무실 내고 회원제로 운영, 선불제로 미수금·재고 없어

정철 이사장(앞줄 가운데)이 1980년 서울 종각지하상가에 정철 카세트 매장인 ‘영어회화의 집’을 오픈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결혼과 함께 본격적인 학원 강사로 나섰다. 강의마다 인기가 많아서 개강 전에 모두 마감되곤 했다. 듣겠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자리가 없었다. 학생들은 당시 교탁 위에 녹음기를 잔뜩 올려놓곤 했다. “이게 뭐 하는 거냐”고 물으니 “선생님 강의를 녹음해 집에 가서 다시 들으려 한다”고 말했다. 어떤 학생은 그 녹음테이프를 미국에 있는 사촌형에게 보낸다고 했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교실 없는 학원을 해 보면 어떨까.’ 내 강의를 녹음해서 팔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바로 ‘정철 카세트’였다. 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강의를 녹음해 카세트테이프로 제작해 팔았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979년 12월 서울 종로2가에 조그만 사무실을 내고 신문에 3단 12㎝짜리 손바닥만 한 광고를 냈다. 제목은 이랬다. ‘유창한 영어회화는 무턱대고 연습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첫날 하루에 600통을 받았다. 온 가족이 총동원돼 전화를 받았다. 어떤 사람은 급하다며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다.

당장 종로 YMCA 건물에 큼직한 사무실을 냈다. 낱개 테이프를 팔아서는 일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회원 모집이었다. 회원제로 운영하면서 6개월에 5만원을 받았다. 6개월 치 회비를 입금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 테이프와 소책자를 보냈다. 회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나중에 친구인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가 놀러 와서 “야, 너 갑자기 재벌 됐다. 너는 경영학적으로 귀재”라며 치켜세웠다. 당시는 물건을 먼저 주고 할부로 돈을 나중에 받는 시스템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나는 돈부터 받아 놓고 물건은 나중에 보냈다. 완전히 거꾸로였다. 이렇게 하니 미수금도 발생하지 않았고 불필요한 재고도 없었다. 당시 종각지하상가가 문을 열었는데 거기에 매장까지 냈다. 나는 강의를 녹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83년 매출 목표액이 100억원이었으니 지금 돈 가치로 환산하면 엄청날 것이다. 테이프에 강의내용을 녹음해 회원제로 운영하는 시스템은 초유의 일이었다. 내 강의가 재미있어서 더 듣고 싶은데 테이프가 빨리 안 나온다고 항의 전화도 많이 왔다.

83년 6월이었다. 난데없이 회사에 국세청 사찰반이 들이닥쳐 모든 장부를 가져갔다. 며칠간 조사를 하는 듯하더니 엄청난 세금을 부과했다. 총 30억원이었다. 너무 큰 액수였다. 모든 자금을 다 동원해도 세금을 내기에는 턱도 없었다. 세금을 못 내자 압류가 들어왔고, 1년 남짓 버티다가 결국 부도가 났다. 84년이었다. 나중 얘기지만, 이 세금 건은 10년간 행정소송 끝에 93년 12월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는 이미 망해버린 뒤였다.

나는 왜 내가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이 지경이 되다니.’ 회의와 좌절감이 몰려왔다. 열심히 공들여 모시던 하늘과 땅, 일월성신, 미륵불 등도 무력한 허상으로 느껴졌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 사건을 통해 반평생 이어졌던 민속종교와의 인연이 끊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할렐루야’다. 나는 다시 학원에서 영어 강사를 시작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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