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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 감성노트]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우울증은 라이프스타일 질환… 몸부터 살살 달래가며 행동을 활성화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위안과 위로의 책들이 넘쳐난다. 당신이 옳다라든가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거나, 고난을 이겨낼 수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라고 한다. 너무 애쓰지 말고, 지금 현재를 즐기고, 자기를 아껴주라고 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남도 사랑할 수 없고, 자존감이 높아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말이 범람하는 건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정서가 우울이기 때문일 거다. 우울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이 세상에 부딪히며 위로의 말이 돼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것이리라. 세상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우울하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 그런데 위로의 말들이 우울증을 이겨 내는 데 정말 도움이 될까. 애석하게도 당신의 마음을 안다는 공감과 당신이 옳다는 인정만으로 우울증이 치료될 수는 없다.

의사가 아무리 명문대학 출신에 큰 대학병원에서 근무한다고 해도 우울증 환자를 완벽하게 장악할 수 없다. 우울증은 환자의 타고난 특성과 성장 배경, 그리고 현재 그를 둘러싼 환경과 문화에 영향을 받는다. 이 모든 것들을 주치의가 다 파악하고 조절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의사를 믿지 말라는 거냐라고 오해하지는 말자. 그런 뜻이 아니다. 우울증이라는 특성과 의료체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환자도 우울증 진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똑같은 약을 써도 잘 낫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환자도 있다. 물론 치료자인 내 능력의 한계가 1차적 이유겠지만, 우울증의 치료 효과를 결정하는 데에는 환자 요인도 무척 중요하다. 약만 믿고 운동을 하지 않거나, 기분을 전환하겠다고 술을 마신다든지, 기운이 없다고 방에만 콕 박혀 있으면 우울증은 치료되지 않는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환자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걸 안다. 왜 의사의 조언을 따르지 않는지, 그가 풀어놓는 설명을 듣다 보면 납득은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하고 환자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관찰해 보고, 작은 변화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우울증은 치료된다.

김병수 정신과 전문의

우울증은 라이프스타일 질환이다.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약물과 함께 생활습관을 점검하고 관리해야만 치료된다. 탄수화물 섭취를 조절하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혈당 조절에 실패하는 것처럼 항우울제만 믿고 신체 활동을 게을리하고, 수면 위생을 지키지 않고, 건강한 식사를 제때 챙겨 먹지 않으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의 기분은 힘이 세다. 기분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변한다. 생각보다 기분이 앞선다. 생각을 바꾸면 기분이 달라진다고 흔히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걸 두고 정서 우선주의(emotion primary)라고 한다. 감정을 일으키는 변연계의 작용이 사고를 지배하는 전두엽의 활성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우울감에 휩싸여 있을 때는 긍정적인 생각을 아무리 해도 기분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체험으로 이미 잘 알고 있다.

우울해지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라는 느낌이 마음을 지배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활동을 아주 잘게 쪼개면 적은 의욕으로도 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낼 수 있다. 나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것만이라도 하라고 한다. 기상 후에 따뜻한 물로 샤워만이라도 하라고 한다. 이것도 못 하겠다는 환자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외출해도 부끄럽지 않을 옷으로 갈아입고 있으라고 조언한다. 굳이 차려입고 있을 필요는 없고, 손님이 집에 찾아왔을 때 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만 아니면 된다. 햇빛 보고 걸으면 좋지만, 이것도 힘들다고 하면 누워 있지 말고 창가에 앉아 햇볕을 쬐라고 한다. 우울하다는 주부들에게는 외출 약속이 없어도 간단한 기초화장 정도는 꼭 하라고 한다.

몸부터 살살 달래 가며 행동을 활성화하는 게 우울증 치료에서 제일 중요하다. 움직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바뀐다. 움직이다 보면 정서가 자극을 받아 변하기 시작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몸으로 털어버려야 한다. 움직이면 생각이 달라진다. 기분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움직이다 보면 기분이 바뀌고 생각도 바뀐다. 기분은 생각이나 의지가 아니라 행동으로 바꿀 수 있다. 기분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기분을 좋게 만드는 활동을 해야 한다. 나를 지배하는 정서를 긍정적으로 만들려면 라이프스타일을 건강하고 충만하게 바꿔나가야 한다.

김병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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