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철 (9) 하나님과 ‘통화’하려 ‘기지국’ 나가기로 결심

큰아들 한인교회서 성령체험… 완전한 주님의 사람되어 귀국

정철 이사장이 큰 아들 학영씨를 안고 있다. 정 이사장은 나중에 학영씨와 종교토론을 하면서 기독교에 입문했다.

1990년 서울 강남에 다시 학원을 세웠다. 친지들이 앞다퉈 도와줬다. 역경을 통해 더욱 강해진 교수법으로 학원은 번창했다. 95년부터는 어린이 영어학원도 만들었다. 원하는 학원에 프로그램을 나눠주다 보니 전국에 300개 이상의 체인 학원이 생겼다.

92년에 중학교 1학년과 3학년 두 아들을 영국으로 유학 보냈다. 두 가지 당부를 했다. 첫째, 서양 색시는 데려오지 말 것. 둘째, 서양신을 믿지 말 것. 그런데 대학에 들어간 큰아들 학영이를 한국인 선배가 런던의 한인교회로 인도했다. 학영이는 첫번째 수련회에서 엄청난 성령 체험을 하고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이 됐다. 나는 이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97년 말 IMF 외환위기가 터졌고 두 아들은 군에 가기 위해 집에 왔다. 학영이는 기독교 신앙에 깊이 빠진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영이가 계속 신체검사에 불합격했다. 그러다 1년 반 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갔다. 그동안 나는 매일 저녁 식사 후 학영이와 종교토론을 벌였다. 학영이는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를 역설했고 나는 “다 쓸데없는 짓”이라며 반박했다.

예를 들면 이랬다. 학영이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죄인이 됐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영생을 누리지 못하게 됐다”고 하면 나는 “야, 하나님도 참 쩨쩨하시지, 그까짓 과일 한두 개 따먹었다고 뭘 그렇게 큰 벌을 내리신다냐. 나 같으면 ‘이제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하고 부드럽게 야단치고 끝내겠다. 그리고 선악과라는 게 그렇게 나쁜 것이면 아예 처음부터 만들지를 말든가, 아니면 눈에 띄게 하지를 말든가, 하나님이 너무 짓궂은 건 아니냐” 하고 따졌다.

학영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몇 개를 먹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빠.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사탄의 유혹에 끌려갔다는 게 문제예요” 하며 설명했다.

이런 종교토론이 1년 가까이 지속됐고 나의 반대논리는 점차 옹색해져 갔다. 결국 나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치고 이제부터 성경책을 읽어 본다. 단, 교회에 가지는 않고 그냥 혼자 단전호흡을 하면서 공부해 보겠다.”

그러자 학영이가 말했다. “아빠, 휴대폰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기지국이 없으면 통화가 안 되는 것처럼, 기지국에 안 나가면 하나님과 통화가 안 돼요.” 결정타였다. “그래? 그러면 이번 주부터 기지국에 나가기로 한다.”

그렇게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교회라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 솔직히 학원과 비슷했다. 강사가 강의하고 다 같이 합창했다. 나도 수업시간에 해당 문법이 나오는 팝송을 가르쳤으니 비슷하게 보였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2~3개월에 한 번씩 교회를 옮겨 다녔다. 열심히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신앙 서적들도 읽었다. 산 기도도 다녔다.

그렇게 2년쯤 지나니 그동안 나를 지배해 왔던 샤머니즘의 껍질이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내가 사는 길은 오직 내 죄를 씻어 주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000년 말 한밤중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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