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사표 양산하는 선거제도 방치하면 정치 후진성 탈피 요원
민주당, 기소권 없는 공수처 수용해서라도 개혁 성사시키길
최악 시나리오 ‘노딜’은 막아야


4·3 보궐선거가 끝났다. 민심 성적표를 받아든 정당들은 이제 미뤄뒀던 입법 과제들을 놓고 4월 국회에서 다시 신경전을 벌일 것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최저임금 결정 구조 개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 선거제도 개편,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이 주요 이슈들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도 뜨거운 과제가 선거제 개편이 아닐까.

현행 선거제는 민심(정당지지율)과 의석수의 괴리가 크고, 승자독식형 소선거구제 비중이 커 사표(死票)가 많이 나오는 결함이 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보면 정당득표율은 새누리당 33.5%, 국민의당 26.7%, 민주당 25.5%, 정의당 7.2%였지만 총 의석수는 새누리당 122석(40.7%), 민주당 123석(41.0%), 국민의당 38석(12.7%), 정의당 6석(2.0%)이었다. 과거 선거를 돌이켜 보면 확실한 지지기반을 가진 거대 양당이 실력(지지율)보다 훨씬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갔다. 우리 정치가 후진성을 벗지 못하고 있는 원인을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선거제에서 찾는 이도 많다.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며 기득권을 분점해 온 거대 양당이 주도해온 한국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실종을 낳았다. 정책을 놓고 경쟁하기보다 상대를 깎아내리기에 급급했다. 상대의 헛발질, 정책 실패가 부른 민심 이반에 편승해 정권을 잡으면 전리품인 양 공직을 독식하고 정치보복을 하는 일이 반복됐다. 거대 양당이 사생결단 대치하는 속에서 쇄신과 성과, 대화와 타협을 바라는 목소리는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선거제 개혁은 특정 정당의 유불리를 떠나 공정한 선거의 규칙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후진적인 정치문화를 바꾸는 손쉽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5년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2(200명)대 1(100명)로 조정하고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국회에 권고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총 의석수가 정당득표율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민심과 의석수 간 괴리를 좁히고 사표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당이 지난해 12월 5당 합의를 어기고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섰고 민주당도 기득권에 연연해하면서 진행이 더뎠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지난 3월 중순 선거제 개편안에 합의했다. 국회의원 정수를 유지하되 지역구를 현행 253석에서 225석으로, 비례대표는 47석에서 75석으로 조정하고 비례대표 의석 연동률을 50%만 반영하자는 안이다. 비례대표 공천의 투명성을 높일 장치도 마련하기로 했다.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는 데도 합의했다. 패스트트랙은 국회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의 찬성으로 지정된 법안은 최장 330일이 지나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해 단순 다수결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한국당이 반대하더라도 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는 방안이다.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문제는 또 터졌다. 바른미래당 일각에서 ‘게임의 룰’은 합의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함께 올리기로 합의한 공수처 법안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반발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결국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논란 끝에 선거법 패스트트랙 지정의 조건으로 공수처 법안 수정을 요구했다.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고 공수처장추천위원회의 야당 몫을 늘리며 위원 5분의 3 이상 동의를 얻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최종안이라고 못을 박았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도 이 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응하지 않고 있다. 기소권이 없으면 공수처의 취지를 살릴 수 없고 검찰 개혁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결론을 얘기하면 기소권 없는 공수처 수용의 문을 열어둬야 한다. 선거제 개편은 정치판의 공정성을 높이고 추가적인 정치 개혁을 이끌어낼 물꼬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과제다. 보궐선거에서 여당에 대한 민심 이반을 확인한 한국당이 현행 선거제도 개편에 선뜻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패스트트랙 지정의 키를 쥔 바른미래당을 설득할 수 없다면 요구를 받아들이는 게 남아 있는 선택지다. 총선이 1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공방이 이어지다보면 어렵게 이뤄낸 4당 합의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한국당이 반대하고 있어 패스트트랙 말고는 공수처를 도입할 수단도 없다. 최선만을 주장할 게 아니라 여의치 않으면 차선의 성과라도 내야 하고, 그것마저 어렵다면 최악은 막아야 한다. 기소권 있는 공수처를 고집하다가는 공수처는 물론이고 선거제 개혁도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

패스트트랙 지정은 선거제 개혁을 성사시킬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후에도 한국당이 진정성을 갖고 응한다면 5당 합의로 선거법안을 마련할 길은 열려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선거구가 사라질 것을 우려한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 정치권 이합집산 압력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민주당이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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