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범죄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수사단과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설치된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 건물 전경. 조사단 내부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해 특수강간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 진술의 신빙성 문제로 의견이 갈렸다. 뉴시스

특수강간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 성범죄 책임을 지울 수 있는 핵심 혐의다. 검찰과 경찰은 2013, 2014년 특수강간 혐의를 두 차례 중점적으로 수사했다. 그러나 모두 무혐의 처분되면서 부실·편파 수사 의혹이 불거졌다. 무혐의 사유는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거였다.

‘인권침해·권한남용 의혹이 제기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목표로 2017년 12월 출범한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김 전 차관 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검찰이 ‘자기 식구’이자 정권의 총애를 받았던 김 전 차관을 봐주기 수사했다는 전제가 있었다. 피해 여성들의 진술이 일방적으로 묵살됐을 거라는 의구심도 있었다. 더욱이 공소시효가 남아 김 전 차관을 상대로 죄를 물을 수 있는 혐의는 특수강간 외에 별다른 게 없었다. 여론의 관심도 특수강간 혐의 입증과 수사 권고에 쏠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이 사건을 겨냥해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결론은 정해져 있는 듯 했다. 그런데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조사단)은 지난달 중순 특수강간 혐의 적용 여부를 논의했으나 최종 결론을 내지 못했다. 내부 논의 결과는 찬성 2명, 반대 2명, 판단 유보 2명으로 팽팽했다고 한다. 법무부가 과거사위 활동 기한 연장을 결정(지난달 19일)하기 전의 일이다. 조사단 관계자는 7일 “혐의 적용에 대해 전원 일치 의견이 안 나오니 연장이 안 될 경우 표결까지 가려했던 것”이라면서 “보고서에 보충의견·반대의견을 붙여서 찬성, 반대표가 얼마나 나왔는지 모두 적어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조사단 내부가 이 정도로 의견이 엇갈린 이유는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 진술의 신빙성 탓이었다. 특수강간 혐의 적용이 쉽지 않다는 쪽은 여성들의 진술 번복 및 불명확성, 석연치 않은 정황들이 적지 않다고 판단했다. 검경의 두 차례 수사 기록을 원점부터 재검토한 조사단이 무혐의 사유를 다시 고민한 것이다. 과거 검경 수사는 피해 여성으로 지목된 여성들의 진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시각이 완전히 엇갈렸다.

경찰은 2013년 7월 최모씨, 박모씨 등 2명을 합동 강간한 혐의(특수강간)로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최씨는 경찰에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기 전 윤씨의 내연녀인 권모씨 등 지인들에게 “김 전 차관이 이 문제로 그만두길 원치 않는다. 착하시다보니 윤중천이 바람을 넣어서 여자들과 어울리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면서 “제가 직접 김 전 차관을 만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나중에 ‘성폭행범’으로 지목할 인물을 ‘착하다’ ‘만나면 좋겠다’는 식으로 언급한 것이다. 최씨 등이 2012년 말 권씨를 통해 이 사건에 개입한 점도 진술 신빙성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됐다. 권씨는 당시 윤씨와 성폭행·간통 혐의로 맞고소전을 벌이고 있었다. 권씨는 최씨에게 ‘윤중천을 엮어야 하는데 도와 달라’는 취지로 말했고 최씨는 “돈을 받고 김 전 차관과 성관계를 했는데 그게 도움이 되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한 조사단 관계자는 “혐의 사실과 반대되는 정황이 너무 많았다”며 “법원에서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고 말했다.

피해 여성 중 하나로 언급돼 온 이모씨도 정황이 애매했다. 그는 2013년 경찰 수사에서는 특수강간이 아니라 윤씨에 의한 상습강요 등의 피해자로 조사됐다. 이씨가 2006~2008년 윤씨로부터 강요를 당해 김 전 차관 등 유력자들에게 수백차례 ‘성접대’를 했다는 게 경찰 조사 결과였다. 검찰이 이를 무혐의 처분하자 이씨는 2014년 김 전 차관, 윤씨를 다시 고소했다. 이때 이씨는 그들에게 특수강간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무혐의 처분이 난 뒤 이씨는 재정 신청까지 했으나 법원도 검찰 손을 들어줬다. 이씨 주장의 신빙성이 흔들린 이유는 ‘돈 문제’였다. 애초 이씨는 수사 기관 등에 피해 정황을 알리지 않다가 윤씨가 이씨를 횡령으로 고소한 직후인 2008년 3월 한 변호사 사무실에 이메일을 보내 처음 관련 내용을 밝혔다. 당시 이씨는 윤씨로부터 빌라 및 상가 보증금 2억5000만원을 빌렸는데, 이를 임의로 처분하자 윤씨는 이씨를 횡령으로 고소했다. 이씨의 당시 이메일에 강간을 당했다는 내용이 없었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이씨가 윤씨로부터 여성 전용 ‘뷰티숍’ 사업 자금을 투자받으려 했다는 정황도 조사됐다. 성폭행 피해시기에 대한 이씨 진술은 수사 과정에서 몇 차례 바뀌었다고 한다. 조사단 관계자는 “성범죄 일시·장소가 불분명하고 앞뒤 정황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조사단은 특수강간 주장과 배치되는 정황들이 이씨의 상습강요 피해 사실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씨가 횡령 고소를 당한 뒤에야 피해 주장을 하는 등 다소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강요 관련 진술은 비교적 일관성이 뚜렷하고 구체적이다. 이씨는 이메일에서 주장한 당시 상황을 2013, 2014년 반복해 진술했다. 이씨의 이메일에는 ‘노예처럼 살며 밤마다 신경안정제를 먹고 잠에 들었다’ ‘김 전 차관이 자기 집 드나들 듯 제 집에 왔다갔다’는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2014년 이씨를 변호했던 박찬종 변호사는 “이씨는 윤중천이라는 사람의 포로 상태였다”고 말했다. 조사단 관계자는 “검찰은 강간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을 뿐 다른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적어도 강요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의 부실수사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다만 상습강요의 공소시효는 10년이어서 지난해 초 시효가 끝나 수사 권고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조사단은 검찰이 상습강요를 무혐의 처분하며 김 전 차관에 대한 윤씨의 성접대 사실에까지 ‘면죄부’를 줬다고 본다. 다만 특수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경찰이 피해 여성들의 진술을 전적으로 신뢰해 반대 정황을 모두 배제했고 검찰은 그 반대로 했다는 게 조사단의 판단이다. 피해자 또는 피의자 한쪽에서 진술을 바라보는 일방적 사고에서 문제가 시작됐음을 확인한 셈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경 모두 일방 주장과 정황만 보는 이분법적 사고(思考)로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조사단이 과거사위에 권씨에 대한 무고 수사 권고 요청을 한 것은 이 지적과 맥을 같이 한다. 권씨는 애초 피해 여성 중 하나로 언급됐다. 그런데 외려 윤씨를 무고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특수강간 혐의만 시효상 수사가 가능하니 이 혐의와 관련된 정황을 무조건 ‘참’으로 봐야 하느냐”며 “그렇게 진행되는 수사가 오히려 편파수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사위는 조사단에 “특수강간 혐의가 본질이니 이에 대해 뭐라도 수사 권고를 하라”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조사단은 과거사위의 활동 기한이 2개월 연장됨에 따라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특수강간 혐의와 관련된 새로운 단서를 발견하길 기대하고 있다. 검찰 수사단 수사를 통해 물증 등 다른 단서가 발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사단은 조만간 이씨를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다른 피해 여성들은 일신상의 이유로 조사를 거부했다.

문동성 구자창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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