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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문록] 심심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 가족이 항상 반려견을 끼고 놀 수 없는 것처럼 반려견도 늘 사람 가족과 놀아줄 수는 없다. 가족이 많다면 서로 돌아가며 놀아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처럼 단둘이 사는 집은 조금 심심한 건 사실이다.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을 일찌감치 터득해 놓았다. 지금처럼 사람의 말을 줄줄이 깨우치게 된 것도 심심해서였다.

반려견 중에는 심심하면 견디지 못하는 녀석들이 있다. 가족이 외출하면 쓰레기통까지 뒤져 난장판을 벌이는 고약한 강아지들이 있고, 종일 먹는 생각만 하며 키가 닿는 곳이면 아무 데나 뛰어오르는 먹보들도 있다. 아직 어려서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서거나 철딱서니가 없어서거나 외로워서이다. 그런 강아지들에게 내 노하우를 알려주겠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선 엉덩이를 뒤로 쭉 빼서 가능한 한 높게 쳐들고 어깨를 낮추는 자세로 앞발을 쭉 펴 보아라. 강아지들이라면 누구나 다 할 줄 알지만, 사람들도 따라 하면 좋을 것이다. 이번엔 반대로 어깨를 높이고 엉덩이를 낮추며 뒷발을 뒤로 쭉 뻗어서 또 한 번. 앞뒤로 연달아 기지개를 켜고 나서 집안을 종횡으로 누비는 거다. 여행은 꼭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온종일 집 안에 있어도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사물들을 바라보며 뜻깊은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오전과 오후, 햇살을 따라다니며 나는 혼자 집 안을 여행한다. 햇살이 비추는 쪽에 가만히 서서 명상에 잠기거나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듯 햇살 한가운데 지점을 찾아 배를 깔고 누워 이런저런 상상을 한다. 그럴 때면 내 등 길이가 열 뼘은 더 자라는 것 같다. 한두 번쯤은 나도 키가 크고 덩치도 큰 진돗개나 콜리 같은 품종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봤다. 이마가 둥근 고래의 삶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집 안 여행이든 바깥 여행이든 돌아다니다 보면 새로운 궁금증이 생기는 법이다.

내가 이렇게 햇살 아래 누워 사색에 잠기는 걸 보면 사람들은 ‘역시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내뱉곤 하지만, 강아지들이 아무 생각도 없이 늘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말로 생각 없는 일이다. 언젠가 누나가 읽어준 시인 이야기가 떠오른다. “심심해서 그랬어. 너무 심심하니까, 심심함을 피하기 위해 여기저기 무엇인가를 찾다 보니, 마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자세히 보인 거야. 자세히 보니까 생각이 일어났어. 그 생각들이 내 마음의 곡식 같아서 버리기가 아까운 거야. 그래서 그냥 글로 옮겨 써봤어. 그랬더니 시가 되었어.”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심심하다는 건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뜻이고 그럴 시간을 가진다는 말인가 보다. 이럴 때 심심하다는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맞는다. 지루하고 할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내 마음, 너의 마음, 주변의 사물과 멀리 삼라만상의 마음을 찬찬히 바라보는 행위.

누나가 컴퓨터에 매달려 있는 동안 나는 베란다로 가서 창밖을 내다본다. 산책을 시켜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는지 누나가 돌아보며 묻는다. 보리야, 지금 심심한 거니? 늘 그러는 건 싫지만, 강아지도 사람도 가끔은 심심한 것이 좋다. 나 혼자 심심해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을 마음에 되새기는 ‘심심(心心)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 바깥 풍경도 내 안에 들여놓을 수 있다. 나도 사람이었으면 이런 봄날엔 한편쯤 시를 썼을 거다. 김용택 시인처럼.

최현주(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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