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나이 수업’] 젊은이가 기댈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되어주자

<일러스트=이영은>

평일 저녁 7시,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들어 다 같이 둘러앉고 보니 10대에서 70대까지 모두 13명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세대 간의 벽이 높아 큰일이라고 여기저기서 걱정을 하니 직접 만나 서로 터놓고 이야기나 좀 해보자고 마련한 자리였다. 순전히 개인적으로 벌인 일이었고 두 시간가량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하면서도 별도의 수고비나 교통비를 지급할 능력은 안 되었기에 주문한 피자와 콜라를 나눠 먹는 것으로 민망함을 씻을 수밖에 없었다.

서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내가 나이 들었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몇몇 사람을 빼고는 다들 초면이라 어색했지만 10대 세 명이 먼저 나서서 언제부턴가 겨울에 내복을 입게 되었고, 설렁탕 같은 뜨끈한 국물이 좋아지는 걸 보니 이제 나이가 든 게 분명하다고 말해서 어른들을 빵 터지게 만들었다.

본인들 이야기보다는 아들뻘, 손주뻘 되는 자기들 이야기에 열심히 귀 기울이는 어른들의 모습이 좋았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더욱더 거리낌 없이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어른들이 싫을 때는 언제인지’를 물은 다음 ‘정말 멋있다고 느끼면서 닮고 싶은 어른을 만난 적이 있는지’를 질문했는데 그중 한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큰 소리로 “목사님이요!” 하고 외치는 게 아닌가.

그날 모임의 장소는 서울 신촌 큰길가 쓰러질 듯 낡아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는 건물 지하에 있는, 가득 채워 앉으면 30명 정도가 들어갈 만한 작은 교회였는데 아이의 눈길은 옆에 앉은 그 교회 담임목사님을 향하고 있었다. 그 교회에 출석하는 아이도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학교 밖 청소년을 넘어 학원에도 지역사회 공부방에도 속해 있지도 않았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틈새교육으로 마련한 교회 공부방에 나오는 아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 교회는 청소년들이 ‘안전을 위해 불 사용 주의하기’ 등 몇 가지 약속만 지키면 언제든 교회에 와서 먹고 놀고 머물 수 있도록 24시간 문을 열어 놓는 곳이었다. 오며 가며 들러보면 늘 아이들 몇이 모여 앉아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거나, 이불을 덮은 채 자고 있었다. 야단쳐서라도 아이들을 집에 들여보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웃 분의 걱정을 듣고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 떠나지 않는다.

“잔소리와 간섭에 지쳐 피난처가 필요한 아이들인데 억지로 쫓아낸다고 집에 들어가겠느냐. 이미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는 자체가 그나마 외부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아이들과 함께 밥 먹고 목욕탕 가고, 그러다 보니 예배에 참석하는 아이들도 생겨나고, 전도의 통로가 된다면 이 이상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10대 후반 아이가 최고라고, 멋있는 어른이라고 외쳤던 목사님은 올해 62세.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몹시 쑥스럽기도 하지만 그동안 우리 교회와 우리 교우만 끌어안고 있는 게 아니라 마을과 지역사회 안에서 무언가 도움이 되고 함께해나가고자 했던 청소년 사역 방향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어 용기가 생긴다고 말씀하셨다.

도저히 친해질 것 같지 않아 내게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지는 존재인 10대의 마음에 가닿은 비결을 궁금해하니, 게임을 할 줄 알면 아이들하고 더 잘 통할 텐데 게임을 할 줄 몰라 오히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웃으신다. 그러면서 덧붙이셨다. “어른이 먼저 변해야 한다!”

맞은편에 앉아 아이와 목사님을 번갈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고 표현하지 못하는 자기 고민 속에 빠져있다 해도 다행히 아이는 지금 ‘진짜 어른’을 만나는 복을 누리고 있구나!

그렇다면 역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진짜 어른’을 만나는 복을 누리도록 돕는 것 역시 어른들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세상에 버릴 경험은 없기에 지금의 방황 또한 튼튼한 나무로 자라기 위한 자양분이라 믿으며 아랫세대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도록 용기를 주고 격려하고 묵묵히 지켜봐 주는 일 말이다.

모임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다시 한번 교회 안을 둘러보니 무료로 장소를 빌려주는 ‘갤러리 처치’답게 이번 달 전시 작가의 여러 작품이 벽에 걸려 각각 조명을 받고 있고, 강대상 옆에는 교회 표어가 소박한 액자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유경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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