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FC의 스트라이커 유병수가 9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종합경기타운 주경기장에서 슈팅 연습을 하고 있다. K리그1(1부 리그) 득점왕 출신인 유병수는 현재 아마추어인 K3리그(4부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프로 복귀의 꿈을 키우고 있다. 화성=최현규 기자

페널티박스 바깥에서부터 빠르게 쇄도한 후 과감한 다이빙 헤더로 골을 넣는 모습은 10년 전과 다름없었다. 최전방에서의 묵직한 존재감도 여전했다. 어느새 서른한 살이 된 화성 FC 스트라이커 유병수는 지난달 27일 FA컵 무대에서 K리그2(2부리그) 안산 그리너스를 3대 2로 무너뜨리고 팀의 4라운드 진출을 이끌었다. 9일 만난 유병수는 “안산에 역전한 후 감독님께 달려가 안겼는데 프로에 데뷔했을 때가 생각나더라”라고 했다.

유병수는 한때 한국 축구의 기대주였다. 2009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그는 2년 차인 22세에 22골을 터뜨리며 K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그가 따낸 1부리그 국내선수 최연소 득점왕 타이틀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인천에서 골세례를 퍼부으며 얻은 별명이 바로 인천의 상징 섬인 월미도를 빗댄 ‘월미도 호날두’다. 그랬던 유병수가 올 시즌부터 아마추어인 K3리그(4부리그) 화성의 주전 공격수로 다시 뛰고 있다. 10년 새 간극만큼 그의 역정도 평탄치 않았다.

2011년 여름 유병수는 인천을 떠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로 이적했다. 첫 시즌에 컵 대회 득점왕을 하며 팀에 우승도 안겼다. 꽃길만 펼쳐지는 듯했다. 그러나 2년 후 러시아 로스토프로 이적하며 문제가 생겼다. 자신을 영입한 감독이 일년여 만에 교체돼 나갔고, 큰 체격을 앞세우는 러시아식 플레이 스타일도 잘 맞지 않았다. 유병수는 “적은 출전 기회 안에 많은 것을 보이려다 보니 쉽지 않았다. 많이 부족했다”고 담담히 회상했다.

로스토프와의 계약과 이적, 병역 문제 등이 한꺼번에 엉키며 유병수는 한국무대에서 1부리그가 아닌 K3리그를 택해야 했다. 상근 예비역으로 복무하며 2017년부터 김포시민축구단에서 뛰었다. 낮에 근무하고 퇴근 후 훈련하는 생활패턴 아래서는 프로다운 몸 상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지난해 6월 소집해제 전후로 진행되던 일본이나 호주 팀으로의 이적이 엎어진 이유다. 유병수도 “몸을 만들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심기일전해 겨우내 집 근처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하던 중 다시 K3리그와 연이 닿았다. 과거 인천에서 플레잉코치로 함께했던 김학철 화성 감독의 제안을 받은 그는 화성을 재기의 공간으로 택했다.

10년간 우여곡절을 거치며 유병수는 변했다. 가슴팍의 엠블럼을 물고 뛰는 특유의 세리머니도 자제하고, 득점 욕심도 조금은 내려놓았다. 유병수는 “예전에는 홀로 득점하는 데만 집중했지만 이제는 동료를 믿고 의지하려 한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차분히 말했다. 여러 외국 감독 밑에서 배우며 전술 이해도와 포지션 수행 능력도 늘었다.

유병수의 꿈은 프로팀에 복귀해 축구선수로 오래 뛰는 것이다. 그의 특기 중 하나는 데뷔전 득점이다. 유병수는 이적했던 팀의 유니폼을 입고 나선 첫 경기에서 항상 골을 넣었다. 유병수의 다음 데뷔골이 언제 나올지 기다려지는 이유다.

화성=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