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 가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지하에 있는 목욕탕에는, 선택할 수 있다면 절대 가지 않는다. 덥고 습기가 찬 밀폐된 공간을 어느 순간인가부터 몸이 거부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게다.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에 사고가 났던 2003년 2월 18일 오후. 주변이 어둑어둑해질 즈음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갔다. 사고 현장 확인을 위해 도착한 담당 검사의 뒤를 따라서였다. 역 내부엔 군데군데 비상등이 켜져 있었지만 연기 때문에 앞을 보기 힘들었다. 발밑은 온통 물바다였고,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다. 덥고 습한, 불쾌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승강장에는 뼈대만 남은 객차 몇 량이 열기를 내뿜으며 소화액과 물을 뒤집어쓴 채 서 있었다. 진화와 구조작업이 끝난 후였지만 바로 그곳에서 192명의 사망자들이 실려 나갔다는 사실이 전해주는 두려움은, ‘현장을 봐야지’라는 젊은 기자의 치기쯤은 저 멀리 날려버릴 만큼 강렬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서울 중심가의 지하 사우나 화재 현장에 갔다. 진화가 마무리된 후였지만 현장 분위기는 대구 중앙로역과 큰 차이가 없었다. 열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목을 자극하는 냄새로 가득 찬 지하 공간. 게다가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는 상황은 몇 달 전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없었던 사고였지만 두려움이 되살아났다. 단지 인명피해가 없다는 사실만 확인한 채 서둘러 돌아 나왔다.

불이 꺼진 후의 모습만 봤지만 그날의 두려움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하물며 불길이 뿜어져 나오던 때 그곳에 있었던 이들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그 순간을 뚜렷이 기억할 것인가. 세상만사 경험할수록 익숙해지는 법이라지만 재난과 아픔은 다르다. 경험이 겹칠수록 고통과 불안은 배가돼 트라우마로 쌓인다.

지난 4일 오후 9시가 조금 지난 시각.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삼포2리 주민 박석전(70·여)씨는 마을방송 스피커를 통해 “토성면 쪽에서 산불이 발생해 번지고 있으니 대피 준비를 하라”는 이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휴대전화에는 재난 문자가 날아들고 있었다. 아흔이 넘은, 거동이 불편한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던 박씨는 어디로, 어떻게 대피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던 캄캄한 밤, 박씨는 집을 나섰다. 마을 이장에게 찾아가 어디로, 어떻게 대피를 해야 할지,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묻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1시간여가 흐른 후 박씨는 대피소인 마을회관으로 향하던 마을 주민들에 의해 골목 어귀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주민들은 급히 119에 신고했지만 그는 숨졌다. 경찰은 사고 현장에서 박씨의 혈흔이 묻은 도로 이정표와 함석지붕 등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강풍에 날아온 구조물에 맞아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씨가 숨진 사실이 알려진 직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산불 사망자를 2명이라고 집계했으나 이튿날 산불 사망자 수는 1명으로 줄었다. 박씨의 사망이 강풍에 의한 것인 만큼 산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그를 피해자 집계에서 제외한 것이다.

박씨는 산불에 치를 떨던 경험자였다. 1996년 고성산불이 났을 때 집 옆 축사에서 기르던 소 10마리를 잃었고, 2000년 동해안산불 때는 집이 다 타버렸다. 2번의 산불 때마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산불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내려앉았을 그가, 다시 닥쳐온 거대한 산불에 맞서 노모와 함께 대피할 방법을 찾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을 떠올리는 일은 퍽 눈물겹다. 관(官)의 입장에서는 공정하고 정확한 집계를 위해 이것저것 따져볼 것이 많겠지만 그의 마지막을 굳이 ‘산불’이 아닌 ‘강풍’이라는 잣대로 구별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 산불의 동력은 바람이고 강풍 없는 큰 산불이란 존재하기 어려운 것인데 산불과 강풍으로 나뉜 경계에 선 그의 죽음이 애달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정승훈 사회2부장 shju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