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5일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은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들로 붐볐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었다. 이들이 탄 배가 이튿날 항해 중에 뒤집혔다. 학생 324명을 포함해 476명을 태운 배는 성난 바닷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전남 진도군 병풍도 인근 해상. 민간 여객선 세월호에서 발생한 참사였다.

이 사고로 304명이 숨졌고 5명은 끝내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그중 한 명이 고(故) 양승진(당시 57세) 선생님이다. 단원고에서 일반사회를 가르치던 인성생활 부장교사였다. 멀미가 심했던 그는 수학여행 전날 귀밑에 멀미약을 붙였다. 아이들과 함께할 여행에 꽤 들떠 있었다고 지인인 세월호 자원봉사자 임영호(51)씨는 전했다. 임씨는 “양 선생님은 씨름선수처럼 풍채가 좋았다”고 했다. 배에서 탈출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생존 학생들에 따르면 그는 배가 기울자 자신의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벗어주곤 “갑판으로 나가라”고 외쳤다. 학생들은 “다리를 다쳤는지 절뚝이셨다. 배가 많이 흔들리는데 중심을 잡을 수 있을지 걱정됐다”고 말했다. 그가 목격된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교편을 잡던 날 “함께하는 스승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약속을 죽음 앞에서도 지켰고,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이런 사연이 켜켜이 쌓였던 세월호 참사 이후 꼬박 5년이 흘렀다. 유족도, 우리 사회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1주기, 정부는 침몰한 배를 인양키로 했다. 2주기,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참사 7시간 동안 성형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3주기, 그가 탄핵당해 내려가고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 4주기, 정부가 주관하는 합동영결식이 치러졌다. 5주기를 맞는 올해는 상징적인 변화가 있다.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이 철거됐고 기억·안전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유족들은 세월호 침몰의 진실이 드러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해 절망스러울 때가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지금껏 잘 버텨 왔다. 촛불도, 새로운 대한민국의 다짐도 모두 세월호로부터 시작됐다는 대통령의 말은 지나치지 않다.

누군가는 “그만하면 됐다”고 하지만 이 문제를 민원 다루듯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생명과 안전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닌가.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지겨운 일이어선 안 된다. 세월호는 인재(人災)의 교과서다. 결함이 있었지만 점검하지 않았고, 안전교육이 부재했으니 사고 매뉴얼도 지켜지지 않았다. 기업과 기관의 유착, 보신주의에 의한 탁상행정도 심판대에 놓였다.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게 해달라”는 유족들의 외침은 비단 선박사고의 재발을 막자는 요구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안전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당부이자 경고였다. 참사의 진상을 밝힐 줄 아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줄도 안다.

정부는 안전을 놓쳤고 기업은 최대 이윤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서 국민은 여전히 안전을 불감한다. 주택 530채와 산림 1757㏊를 잿더미로 만든 강원도 산불의 원인으로 전신주 개폐기에서 발생한 스파크가 지목됐다. 아직도 사소한 스파크쯤을 막아내지 못한다. 지난해 말 고등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강릉 펜션 사고는 어떠한가. 건설업자는 등록되지 않은 사업자였고, 보일러 시공자는 무자격자였다. 안전관리인은 가스 점검을 소홀히 했으며, 펜션 소유주는 불법 증축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스안전공사는 안전한 시설이라며 합격점을 줬다. 대형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도, 제천과 밀양 화재 참사도, 고(故) 김용균씨의 죽음도 안전을 망각한 ‘설마’에서 비롯됐다. 우리는 여전히 안전을 도외시하며 비슷한 죽음을 반복했다.

교복을 입은 앳된 단원고 학생 두 명이 장례식장에 들어섰던 날을 기억한다. 그런 공기를 처음 접해보는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고인의 이름이 적힌 전광판을 한참 들여다보던 한 학생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몇 층부터 갈래?” 그들은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친구를 떠나보냈을까.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웠던 노랫말을 기억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생명과 안전이란 권리를 모두가 온전하게 누릴 수 있을 때까지 포기는 없다.


박민지 온라인뉴스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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