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기관들을 곤혹스럽게 만들 정도로 지난해 큰 폭 하락했던 국제유가가 무섭게 오르고 있다. 올해 들어 유가 상승률은 증권 시세의 상승 폭을 훨씬 웃도는 40%대에 이른다. 과도했던 하락 폭, 산유국 주변의 긴장 고조 등 여러 원인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다만 국제유가가 한국 경제를 위협할 정도로 한없이 더 오를 것으로 전망하는 견해는 많지 않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이달 들어 배럴당 60~64달러 선에서 거래되며 연초 대비 40%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 정책으로 돌아선 탓이 크다. 지난달 OPEC의 석유 생산량은 3039만 배럴로 최근 4년 만의 최소치였다.

이란 베네수엘라 리비아 등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된 것도 유가 상승을 불렀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리비아가 내전 상태에 접어들며 원유 공급이 감소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미국이 이란 정규군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이란이 반발한 최근 사건도 중동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1월부터 미국과 갈등을 빚으며 석유 생산량이 곤두박질친 상황이었다.

유가 흐름와 경기 판단의 관계가 항상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유가 상승은 경제지표 개선과 맞물려 있다고 분석하는 전문가가 많다. 미·중 무역협상 타결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지난해 말과 비교해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가 나아졌고, 이는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 움직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는 미국의 구매관리자지수(PMI)가 2월보다 지난달에 좋아진 점, 최근 비농업 취업자 수가 예상치를 상회한 점을 유가 상승 요인 중 하나로 판단했다.

고유가는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에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교역 조건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단순히 유가가 오르면 나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국이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긴 하지만 정유 업체를 통해 석유 가공품을 수출하는 비중도 작지 않기 때문이다. 김훈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75달러를 넘어서기도 했지만 경상수지 흑자 차원에서 큰 부담이 없었다”며 “현재의 유가가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만일 배럴당 80달러를 넘어간다면 위기감을 느끼겠지만 앞으로도 국제유가 급등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가 80달러’가 어렵다는 진단은 해외 투자은행(IB)의 시각과 일치한다. 제프 커리 골드만삭스 상품연구소장은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유가가 80달러 수준에 도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올 여름부터 OPEC의 증산이 이뤄져 유가가 점차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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