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 아닌 명령에 따라 이전·철거됐던 한국 동상들
광화문광장 개편 필요하지만 동상 이전은 여론 동의 있어야
미국 맨해튼의 공공조형물은 철거 결정에 4년이나 걸렸다
광화문의 두 동상 거취 두어 달 만에 결론 내려서야


문재인 대통령의 광화문 집무실 공약은 불발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누군가는 실패했고, 누군가는 진행 중에 있는 광화문광장 치적 사업. 박정희 시대 유산인 이순신 장군 동상이 이정표처럼 서 있는 그곳에 진보 진영 모두 목을 매는 것은 장소성 때문이다.

광화문은 진보의 성지다. 매화처럼 환했던 촛불들이 모여 피 흘리지 않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낸, 우리 근현대사에서 유례없는 성숙한 시민정치의 경험을 그곳에서 우리는 했다. 정치는 곧 이미지다. 장소가 갖는 상징성을 전유하는 것은 정치인에게 중요하다. 잠재적 대권주자인 박 시장에겐 더욱 절실한 치적이다.

2021년 마무리를 목표로 하는 이른바 ‘새로운 광화문 프로젝트’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두 동상의 이전으로 보인다. 국제공모 당선작은 세종문화회관 앞쪽 차로를 광장으로 편입시킨다는 것이 핵심이다. ‘차 중심의 거대한 중앙분리대’라는 비판을 듣는 현재의 문제점을 해소하는데 방점이 찍혔다. 당선작은 시야 확보, 광장 기능 수행에 제약이 될 수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을 외곽으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는 반발했다. 2009년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한 김영원 홍익대 교수는 지난달 하순 입장문을 내고 “이런 망발이 없다” “옮기느니 없애겠다”며 강한 어조로 반대했다. 한글단체도 반대했다. 1968년 이순신 장군상을 제작한 김세중(1928∼1986) 조각가도 살아 있었다면 항의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개인적으론 새 광화문 프로젝트에 찬성한다. 무수히 그 앞을 지나갔지만 그곳을 광장이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 보행신호가 꺼지기 전에 서둘러 건너가야 하는 교통의 섬이었다.

공공조형물의 철거 및 이전 사례는 적지 않다. 미국 조각가 리처드 세라의 조각품 ‘기울어진 호’ 철거 사건이 대표적이다. 연방조달청 의뢰를 받은 이 작품은 81년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 청사 광장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듯 설치됐다. 높이가 어른 키 몇 배인 3.6m였다. 길이도 무려 36m나 됐다. 세금 17만5000 달러(약 2억원)가 들어갔지만, 출퇴근 때마다 거대한 조형물을 빙 둘러 가야 했던 시민들은 철거를 요구했다. 마침내 1985년 청문회가 열렸다. 배심원들은 4대 1로 “미술작품이 우리의 휴식처를 빼앗아갔다”는 연방정부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89년 3월 작품은 철거됐다.

한국의 기념비와 동상도 흔하게 수난을 당했다. 조은정씨가 쓴 ‘동상’에 따르면 김세중 조각가가 만든 지금의 이순신 장군 동상 자리는 4·19기념탑이 예정돼 있었다. 5·16군사 쿠데타 이후 지금의 ‘수유리 4·19민주묘지’로 밀려났다. 박정희 정권은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웠다. 그가 왜 무신이자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이순신 장군을 좌대 위에 올렸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박정희 정권 초기 발족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애초 이순신 장군 동상 자리에 제안한 것은 세종대왕 동상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왕의 동상’이라는 이유로 덕수궁 내에 안치됐다. 이후 덕수궁 정비사업에 따라 홍릉수목원 건너편 세종대왕기념관 앞마당으로 옮겨졌다.

두 동상의 이전을 두고 의견을 구해 봤다. 각기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역사성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50년이 넘었다. 치욕의 역사든, 자랑할 역사든 50년이 되면 근대문화유산 자격이 있다. 임옥상 작가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역사가 오래돼서 하나의 풍경으로 봐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오세훈 시장 때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에 대해 존치하자는 의견이 많았던 건 서울 시민의 그런 생각이 투영된 것 같다. 세종대왕 동상은 10년 됐으니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다.

세종대왕 동상을 만든 김영원 조각가는 인물 조각 분야에서 1급의 실력이라는 게 세간의 평가다. 그럼에도 설립 당시부터 지적된 거대한 크기는 문제다. 어른 키의 6배가 되는 규모 탓에 그 앞에 서면 뒤의 북악산도, 경복궁도 안 보인다.

중요한 것은 기능으로서의 광장이 아닌, 내용으로서의 광장의 출현이다. 광장은 참여민주주의와 시민민주주의의 보루다. 과거 동상은 공론이 아니라 수직적인 명령에 따라 이전되거나 철거됐다. 동상의 유랑이 흔했다고 그것이 이전의 정당성을 담보해 주지는 않는다.

이전과 해체의 과정은 더욱 진중한 여론수렴과정이 필요하다. 리처드 세라의 작품 철거에는 수년이 걸렸다. 서울시는 상반기 안에 동상 이전에 관한 여론조사를 마치고 연내에 공모 설계안에 결과를 반영한다는 입장이다. 벌써 4월 중순이다. 두어 달 만에 뚝딱 여론수렴이 될까. 더디 가더라도 민의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그것이 박 시장이 진정 광장의 내용을 전유, 말 그대로 독차지하는 길이다.

손영옥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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