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더 이상 당하고만 살던 을(乙)이 아니다. 사회 부조리를 꼬집으며 을들을 대변하겠다고 나선 극들이 브라운관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무겁지는 않다. 묵직한 주제의식을 유쾌함이라는 그릇에 담아 전하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첫 전파를 탄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MBC)이 대표적이다. 극은 노동 문제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유도선수 출신 6년차 공무원 조장풍(김동욱)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돼 패악을 일삼는 사업주들을 뉘우치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날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박원국 PD는 “갑(甲)이 힘없는 을에게 횡포를 부릴 때 누군가 갑을 응징해줬으면 좋겠다는 비현실적 환상을 투영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첫 회부터 이런 장면들이 가없이 이어졌다. 무사주의로 일관하던 장풍이 아르바이트 월급을 못 받은 학생, 노동권 보장을 위해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을 만나며 점차 각성해나가는 과정이 담겼다. 그는 노동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악덕 사업주 구대길(오대환)에게 통쾌한 발차기를 날린다. 자신을 가로막는 이들에게는 이력을 살려 시원한 유도 기술을 내리꽂는다.

KBS2 드라마 ‘국민 여러분’

지난 1일부터 방송 중인 ‘국민 여러분’(KBS2)도 비슷한 결을 지닌 드라마로 볼 수 있다. 경찰과 결혼한 사기꾼 양정국(최시원)이 국회의원에 출마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뤘다. 극은 기획 의도에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아프게 하는 갑들에게 통쾌한 한 방을 먹이며 상실감을 극복하는 힐링을 지향한다.’

신변을 위협하는 덫에 걸린 정국이 아내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거에 나가게 됐다는 설정이다. 앞으로 정치판에 데뷔한 그가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과 얽히고설키며 정의를 깨우쳐 나가는 모습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반응도 나쁘지 않다. 6~7%(닐슨코리아)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월화극 1위 ‘해치’(SBS)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전문가들은 풍자적 성격을 가진 드라마의 연이은 등장이 최근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정석희 TV칼럼니스트는 “드라마는 본래 대중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사회 문제를 환기해왔다. 하지만 최근 버닝썬 사태를 비롯해 권력 간 부당한 결탁을 시청자들이 많이 접하게 되면서, 유사한 문제들을 꼬집는 극에 대한 제작 수요가 보다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눈에 띄는 건 이처럼 저마다의 ‘정의’를 내세운 극들이 대부분 코믹한 호흡을 가져간다는 데 있다. 2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사랑받고 있는 ‘열혈사제’(SBS)가 그렇다. 국정원 요원 출신 사제 김해일(김남길)과 동료들이 사법·행정·정치 권력이 유착해 비리가 판치는 가상의 지역 구담구를 정화하는 과정을 그렸다.

살인과 폭력 등 각종 범죄가 등장하지만, 극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쾌활하다. 중국집 배달원 쏭삭(안창환)이 사실 전직 태국 왕실 경호원이었다거나 편의점 직원 오요한(고규필)이 빵을 많이 먹으면 청력이 강해지는 특이체질을 지녔다는 등의 엉뚱한 상상력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맛깔나는 대사가 극의 유쾌함에 힘을 보탠다.

감사로 승진한 은행원 노대호(김상중)가 조직의 부정부패를 파헤치는 장르물 ‘더 뱅커’(MBC)도 코믹함을 얼마간 묻혀놨다. 철 지난 ‘아재 개그’를 즐기는 중년 대호의 모습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극의 톤을 부드럽게 조절한다.

‘주제는 무겁게, 대신 분위기는 가볍게’가 드라마 불패 공식의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는 브라운관이 가진 본질적 속성과 연관돼 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영화와 달리 긴 호흡의 드라마는 시청자의 피로감 조절이 중요하다”며 “주제로 집중도를 잡는 동시에 웃음 코드로 피로도를 줄이는, 일종의 전략적 중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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