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수 목사의 생명사역 목회] 하나님 나라 확장 위해 기꺼이 자기 부인할 때 넘치는 은혜

<14·끝> 십자가를 지는 사역

권성수 대구동신교회 목사가 2017년 4월 대구 수성구 교회에서 개최된 ‘제3회 생명사역콘퍼런스’에서 십자가를 지는 생명사역자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대구동신교회 제공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목회자이셨던 아버지께서 새벽기도를 강조하면서 내게 늘 하셨던 말씀이다. 당시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교회도 멀리 떨어져 있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려면 새벽공기를 마시며 30분은 족히 걸어야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버지의 말씀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목사가 되고서야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 순종하는 분이셨음을 깨달았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해당한다. 이 말씀은 우리를 죽이려는 말씀도, 가학적인 말씀도 아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고 순종해야 생명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답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은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메시아)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면, ‘어떤 그리스도인가’하는 면에서 오해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고대하던 그리스도가 오시면 로마의 학정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키고 이스라엘을 다시금 강력한 국가로 만들 것이라 기대했다. 만일 제자들이 “우리가 고대하던 메시아가 드디어 오셨다. 메시아 만세!”라고 만방에 외친다면 예수께서 죄와 사망과 지옥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근본적이며 궁극적인’ 구원을 이루시는 데 방해가 됐을 것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에 예수께서는 비로소 제자들에게 자신이 영광의 메시아가 아닌 ‘고난의 메시아’로 왔다고 말씀하셨다.(마 16:21) 베드로는 이 말씀을 듣자마자 예수를 붙들고 항변했다. 마치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을 꾸짖듯, 제자인 베드로가 스승이신 예수께 이렇게 말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 이 말은 “주여,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합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그런 일이 결코, 결코(이중 부정으로 강조하여) 주께 일어나면 안 됩니다”라는 식의 질책이었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책망하셨다. 이유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베드로의 생각 틀에는 하나님의 것들이 아니라 사람의 것들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호되게 베드로를 혼내신 것이다

베드로의 생각의 틀 속에 가득했던 ‘사람의 것들’은 예수께서도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 16:23)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유혹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고난의 길, 죽임을 당하는 길은 협착해 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것들’을 선택하는 길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 자기를 부인하는 것,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 셋째, 예수를 따르는 것이다. 첫째와 둘째는 부정과거 시제이다. 헬라어에서 부정과거 시제는 단호한 결단을 가리킨다. 셋째 명령은 현재형이다. 헬라어에서의 현재형은 현재진행을 의미한다. 즉, 우물거리지 말고 단호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한 번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따르라는 것이다.

A교회에서 헌금 10만원이 사라진 작은 재정 사고가 났다. 그 사고 때문에 목회자와 중직자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일어났다. 심지어 법원에 소송까지 제기했고 10만원 때문에 목회자와 중직자들이 경찰서에 출두해야 했다. 이 일로 인해 많은 성도가 상처를 입었고 부교역자 한 사람이 교회를 사임하게 됐다.

B교회에서도 재정 사고가 났다. 헌금 195만원이 사라진 것이다. 한 성도가 200만원을 헌금했는데, 나중에 보니 5만원만 헌금한 것으로 처리된 것이 밝혀졌다. 성도가 200만원 헌금한 것도, 195만원이 사라진 것도 확실했다. 그러나 누가 그랬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의심하려면 누구든 의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 교회 담임목사는 195만원을 교회에 헌금했다. 누가 그랬는지 알 수 없으나, 교회에는 절대 손해를 끼칠 수 없으니 교회의 대표인 담임목사가 대신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B교회는 서로 의심하기보다는 서로 책임을 지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A교회와 B교회의 차이는 무엇일까. A교회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자세가 없었다. 반대로 B교회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자세가 있었다. 특별히 교회에 손해가 가지 않도록, 헌금했던 사람이 조금이라도 상처를 받지 않도록 자기 돈을 교회에 헌금하는 ‘작은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자세가 있었던 것이다.

생명사역은 십자가를 지는 자세로 사역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기꺼이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천국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져야 한다. 에누리 없는 순종을 통해 끊임없이 예수를 따르는 생명사역자가 돼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생명사역자들에게 넘치는 은혜와 복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권성수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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