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밖 청소년(가출청소년) A양(당시 16세)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남자친구와 사귄 지 4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만 주변에 알릴 수는 없었다. 집에 돌아가는 건 애초 선택지가 아니었다. 포털 상담게시판을 전전하던 A양은 임신 약 5주째 몰래 임신중절, 이른바 낙태 수술을 받았다. 수술에 보호자 동의가 필요해 아는 언니의 주민등록증을 빌렸다. 수술에는 80만원이 들었다.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고 있던 A양에게는 큰돈이었다. 남자친구는 돈 한 푼 보태지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11일 낙태죄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청소년 임신 등의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걱정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임산(姙産)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부족하고, 출산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가중하는 현실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자칫 성 인식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낙태 사고가 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낙태가 출산이나 육아 부담에 대한 반대급부의 선택이 되지 않도록 정부가 다양한 형태의 임산 지원을 강화하고, 미혼부에게도 양육 책임을 강력하게 부과하는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15~19세 여학생들의 평균 임신경험률은 0.3%다. 2016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임신을 경험한 일반 청소년의 경우 66.1%(위기 청소년의 경우 79.1%)가 임신중절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올해 인구에 대입하면 전국적으로 현재 청소년 2500명 정도가 임신중절을 경험했다는 추산이 나온다. 임신경험 관련 설문에 의사를 밝히는 경우가 적고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가정 밖 청소년 등의 사례까지 합하면 실제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낙태죄 폐지가 이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낙태 자체를 고민하지 않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10대 응답자들은 임신중절의 이유로 절반 이상이 ‘(출산 시) 학업 직장 등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고용불안정이나 소득 등 경제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라고 선택한 이도 22.6%에 달했다. 부모 손에 이끌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임신중절을 당하기도 했다.

미혼모단체 위드맘의 이효천 대표는 “청소년의 경우 임신을 하면 남자친구가 연락이 두절되거나 헤어지는 경우가 다수”라며 “임신 사실 때문에 가정에서 내쫓기는 경우도 70% 정도로 매우 높다”고 했다. 이들은 알아서 임신중절 수단을 마련하거나 어쩔 수 없이 아기를 낳은 뒤 심한 경우 유기, 심지어 살해 등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낙태를 선택하는 주된 요인이 사회적 시선이나 생활 여건이라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결정이 청소년들에겐 오히려 낙태 외에 다른 선택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낙태죄 논란에 시선을 집중해선 안 된다고 봤다.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낙태죄가 폐지되어도 임신 초기 적절한 지원이나 상담이 이뤄지지 않으면 영아 유기나 살해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면서 “독일의 임신갈등상담소처럼 관련 상담을 전담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위드맘 이 대표는 “정부의 양육비 지원 정책은 이른바 ‘정상가족’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며 “출산에 대한 남성 중심적 시각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청소년 임산부의 경우 일할 수가 없어 기초생활 수급을 신청해야 되는데 집을 나온 청소년들은 서류 제출조차 쉽지 않다”며 “아이 양육을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경우까지 생긴다”고 했다.

남성에게 책임을 강력하게 부과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일례로 덴마크나 스웨덴 핀란드 등에서는 양육에 참여하지 않는 미혼부가 미성년이더라도 정부가 끝까지 추적해 양육비를 부과한다. 양육비 지불 능력이 없으면 정부가 이를 선지급한 뒤 비양육 부모의 소득에서 원천징수하는 방식이다. 실제 징수되는 비율은 높지 않지만 임신에 대한 책임감을 높여 원치 않는 무책임한 출산을 원천적으로 막자는 취지가 포함돼 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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