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의 핵심 역할은 무엇일까. 영리 기업이나 비영리 공공단체를 막론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경영자의 덕목으로 ‘조직 장악력’을 강조한다. 선진국에는 없는 개념이라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모든 구성원을 일사불란하게 명령에 복종하게 만드는 ‘통제’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구성원을 치밀하게 감시하고 철저하게 처벌해 한 치의 오차 없이 조직을 완벽하게 통제하면 뛰어난 경영자일까.

전혀 아니다. 경영의 핵심은 ‘목적 달성’이다. 기업 경영은 경제적 가치 창출이라는 목적이 핵심이며, 대학 경영은 연구와 교육이 핵심이다. 통제는 목적 달성을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통제가 경영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경영자들은 수단에 집착하다 정작 목적을 놓치게 된다. 바로 ‘수단과 목적의 전도’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에 집착하는 경영자들은 철저한 감시와 제재에 불철주야 바쁘기 때문에 자신이 경영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왜 위기에 빠졌는지 이해도 못 한다.

통제 집착형 경영자가 조직장을 맡으면 전임자가 ‘방만한’ 경영을 했기 때문에 특단의 통제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즉시 전임자에 대한 감사와 사정 작업에 착수한다. 신임 조직장이 미래 비전을 이야기하기 전에 취임하자마자 조직의 세부 규정집과 전임자 재임 시의 회계장부를 다 가져오라고 하면 십중팔구 통제 집착형 경영자다. 이를 통해 전임자가 얼마나 방만했는지를 증명하느라 조직의 미래 비전과 전략을 구상하고 공유해야 하는 취임 초기를 낭비하는 것이다. 그 후 치밀한 감시와 평가, 상벌 시스템을 구축해 구성원들을 옥죄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부분 마른 수건 쥐어짜는 식의 자르고 줄이는 비용 절감에 올인한다.

그런데 이런 통제 집착형 경영은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향상시킨 듯 보이나 조직의 활력과 중장기 성장잠재력을 파괴함으로써 결국은 조직을 붕괴시키게 된다. 대표적 예가 혁신의 대명사인 3M이 2000년대 초 통제 집착형 경영의 맹신자인 제임스 맥너리가 회장에 취임하면서 대규모 정리해고와 공격적 원가절감, 그리고 모든 경영 프로세스의 철저한 사전 승인과 통제로 단기적으로 계량적 성과가 급등하는 듯하다가 곧이어 혁신 역량을 상실하면서 생존 위기에 빠졌던 사례다. 그 후 3M은 맥너리를 해고하고 그가 시행했던 대부분의 통제 시스템을 제거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혁신 역량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물론 통제는 조직 전체의 성과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경영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재무나 회계처럼 통제를 담당하는 부서가 조직 경영의 전면에 나서면 절대 안 되며 반드시 그림자처럼 보이지 않게 보좌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경영의 본질은 목적을 추구하는 미래지향적 행위인 데 비해 통제는 과거에 무엇을 잘했고 못했는지에 집착하는 과거지향적 행위다. 또 경영의 본질은 불가능하던 목적 달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치 창출 행위인 데 비해 통제는 그 과정의 위험과 효율성에 집착하는 도구적 행위다. 그리고 경영이 상향적 가능성 즉 ‘업사이드 포텐셜’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 데 비해 통제는 그 과정에서 하향적 위험 즉 ‘다운사이드 리스크’를 극소화한다. 따라서 이 두 가지는 상호보완적이나 통제가 경영의 주가 될 수는 없다.

이런 면에서 현재 국가 경영이 미래지향적 비전과 전략보다는 통제에 과도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 같아 아쉽다. 현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적폐청산은 전형적인 과거지향적 통제 집착증이다. 참여연대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장하성 교수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이유도 전공이 통제의 대표적 분야인 기업재무이기 때문이다. 통제 전문가가 미래지향적 정책 기획을 맡았으니 전공 적합성이 없었던 것이다. 자율성과 개방성이 핵심인 현대사회는 24시간 360도 감시가 가능한 감옥인 파놉티콘과 유사했던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 달리 통제가 경영의 핵심 원리가 될 수는 없다. 통제는 경영이 아니다.

신동엽(연세대 교수·경영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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