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5주기] “봉사 통해 나도 누군가에게 축복이 될 수 있음을 느껴”

단원고 2학년 3반 생존자 김도연씨의 ‘희망’

세월호 생존자 김도연씨가 15일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빌딩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김도연(22·여)씨는 세월호 생존자다. 15일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빌딩에서 만난 김씨는 “아직도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4월이면 유독 심해지는 참사 트라우마로 잠을 못 잔다고 했다. 그의 눈은 충혈된 상태였다. 김씨는 참사 당일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이었다.

김씨는 친구들이 그리워질 때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고 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가 하면, 스트레스성 위염도 앓고 있다고 했다. 친구들이 보고 싶어 편지를 쓰곤 하는데 정작 보낼 곳이 없다. 그럴 땐 일기로 달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전날 밤도 꼬박 밤을 새우고 새벽 5시까지 잠을 못 이룬 채 ‘우린 언제 잠들 수 있을까’ 하며 생존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김씨는 참사 후 3년까지는 주변 시선이 두려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세월호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정작 생존자들은 말을 아껴야 했다. 사회가 이들에게 침묵과 슬픔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생존 학생 중 억지로라도 웃고 지내는 이가 있으면 ‘쟤는 힘들다면서 왜 웃어’라며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피해자와 생존자는 마땅히 우울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었다.

2017년 김씨와 생존 학생 10여명은 한국구세군(사령관 김필수)과 함께 캄보디아 단기선교를 떠났다. 그마저도 조용히 다녀와야 했다. 김씨의 담당은 미술. 현지 아이들과 함께 색종이를 접고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졌다고 느꼈다. 김씨는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부정적이지 않고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며 “가만히 있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해야만 트라우마는 극복된다는 것도 배웠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렇게 정이 든 캄보디아 아이들과 헤어지며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준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떠나는 버스를 자전거로 끝까지 쫓아오는 아이들을 보며 김씨는 참사 후 그에게 편지를 써 준 이름 모르는 이웃들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자신도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랑의 행복감이었다.

“슬프지 않은 게 아닙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 어떻게든 웃으려 합니다. 그 작은 차이를 이해해 주세요.” 김씨는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중이다. 그러기 위해선 마냥 슬퍼하고만 있어선 안 됐다. 해답은 타인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에서 시작했다. 대학생인 김씨는 매해 4월 16일이면 교정에서 4·16을 기억하며 소중한 이웃이 되자는 노란 리본을 나눠준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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