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옆 둔치 운동장이 시끌벅적했다. ‘제41회 재경 조도면향우회 한마음체육대회’가 한창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면 단위 향우회가 끈끈하게 이어진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행사는 중앙 무대를 중심으로 마을별로 운동장 가에 천막을 치고 진행됐다. 대개 40대 이상의 중년들이 모여 왁자지껄하게 회포를 풀었다. 그러다 줄다리기, 축구 또는 장기자랑 순서가 되면 우르르 뛰어나가 신명 나게 놀았다.

조도면. 바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현장의 행정단위로 160개섬으로 이뤄진 지역공동체다. 2016년 기준 1800여 가구 3000여명이 산다. 면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나기 전 주민 전체가 꿈에 부풀어 있었어요. 해상국립공원 활성화에 따른 관광자원 지원 계획이 수립되면서 민박 시설 등을 준비했거든요. 하지만 참사 이후 시간이 정지돼 버렸어요. 참사 났던 해는 당연히 체육대회도 못 했죠. 다들 망연자실한 가운데서도 성금 모금이 이어졌고 지금도 매년 성금 모금을 해요. 내가 멱 감기 위해 뛰어들던 바다였죠.”

관사도 출신 이영길(가명·50)씨는 눈을 감으면 고향 바다에 세월호가 그려져 눈을 뜬다고 했다. 그가 고교 진학 무렵 고향에 고등학교가 생겼다. 그는 9시간 걸리는 새마을호 배를 타고 목포로 유학했고 서울에 뿌리를 내렸다. 고향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와 같을 것이라고 했다. 참사 전만 해도 재경 체육대회엔 수천명이 모였으나 이후 많이 줄었다. 이날 관사도 사람들은 마을별 입장 때 대형 태극기의 네 귀퉁이를 잡고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 퍼포먼스를 했다. 세월호 얘기는 꺼내지 않았으나 마음들은 같았다.

참사 직후, 이듬해 등 몇 차례 관사도를 비롯한 조도면 섬 주민의 생활을 취재했다. 한국 교회가 참사 여파로 마을에 생필품 수급이 어렵자 지원과 봉사에 나섰고 이를 보도하기 위함이었다. 섬 주민들은 너나없이 불편을 감내했다. “나도 자식 키우는 사람”이라고 했다. 관사도교회 목사는 참사 당일 손수 배를 몰고 나가 구조 작업을 한 분이었다.

공동체(community)의 라틴어 어원은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함께하는 것’이다. 지연, 학연을 내세워 ‘구별’하는 것과 다르다. ‘고향 잃은 사람들’의 세상에 조도면향우회가 계속됐으면 한다.

전정희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