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절 집을 지을 때 주춧돌의 역할은 중요했습니다.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워야 나무로 된 기둥이 비나 습기에 상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경우 주춧돌은 생긴 그대로의 펑퍼짐한 돌을 구해 사용했습니다. 얼핏 주춧돌은 바닥이 반반해야만 쓸모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 않았습니다. 울퉁불퉁한 상태로도 기둥을 세우는 데 문제가 없었던 것은 그랭이질 때문이었습니다.

울퉁불퉁한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며 돌을 깎아내는 대신 선택한 것이 있습니다. 주춧돌의 높낮이를 따라 나무 기둥의 밑동을 깎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을 그랭이질이라 불렀는데, 생각해보면 절묘한 이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돌과 나무를 접착제나 못을 사용하지 않고도 하나로 이어주었으니 말이지요. 그랭이질이 제대로 된 두 개의 기둥 위에 널판을 얹으면 그 위를 목수들이 올라가 걸어 다녀도 무너지지 않았다 하니 감탄할 만한 일이었지요.

새삼 그랭이질이 생각나는 것은 우리야말로 그랭이질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에 주님의 뜻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우리의 생각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깎아내고 다듬는 믿음의 그랭이질이 필요한 것이고요. 그런 점에서 고난주간은 믿음의 그랭이질을 하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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