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32)] 인세반 유진벨재단 회장

“북한 결핵 환자, 성경 가르침대로 도울 뿐”

인세반 유진벨재단 회장이 15일 경기도 안양 재단 사무실에서 북한의 다제내성 결핵 환자 실태와 치료약 지원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안양=강민석 선임기자

자리에 앉기도 전에 “나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통일은 그야말로 먼 미래이고 지금 필요한 건 각혈로 죽어가는 북한의 결핵 환자를 돕는 일이라 했다. 성경의 가르침 그대로 말이다.

인세반(스티븐 린튼·69) 유진벨재단 회장을 15일 경기도 안양 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 회장은 미국 남장로교 파송으로 호남에 복음을 전한 유진 벨 선교사의 4대손이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한국말에 능숙하다. 1995년 유진벨재단을 세워 2년간 북한에 식량을 보냈다. 97년부터는 북한의 결핵 환자들을 돌봐왔다. 2008년부터는 다제내성 결핵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치료한다. 한국에 복음을 전한 선대의 노력 그대로 북한에도 복음이 들어가길 바라며 하는 일이다.

다제내성 결핵은 항생제 내성이 생겨 치료가 어려워진 결핵을 일컫는다. 호흡기로 감염되며 최소 18개월 동안 꾸준히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완치가 어렵다. 증상이 호전됐다가도 면역이 약해지면 재발하곤 한다. 공기로 감염되는 치명적 질병이어서 ‘걸어다니는 암’으로도 불린다.

북한에선 연간 8000명 정도가 이 병에 걸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유진벨재단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는 이는 1200명 수준이다. 인 회장은 “북한의 결핵 환자 중 일부만 돌볼 뿐이니 우리는 일을 잘하는 기관이라 볼 수 없다”면서 “우리만으로는 힘에 부치는 일이라는 걸 절감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유진벨재단은 매년 4월과 10월 의약품을 싣고 북한에 넘어가 12곳의 병원에서 일일이 환자들을 대면하고 치료약을 전한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았을 때도 이 사역은 중단되지 않았다. 유엔의 대북제재 속에서도 지난해 11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인도적 지원에 대한 면제 승인을 받아 중단 없이 의약품을 전달하고 있다.

비결이 뭘까. 인 회장은 민간이 하는 일과 정부가 하는 일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통일이나 북·미 대화, 이런 것에 관심이 없어요. 그저 성경 말씀대로 치료약이 부족해 결핵 등 여러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살리는 데 집중합니다. 민간과 정부는 엄격히 구분돼야 해요. 지금 북한을 돕는 일은 정부의 심부름을 하거나 반정부 활동의 일환으로 하는 등 극단으로 쏠려 있어요. 순수 민간영역이 줄고 있어요. 강제성 있는 세금으로 지원되는 정부 일과 전액 순수 후원으로 진행하는 민간의 일은 비교할 수 없어요. 민간 지원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죠.”

인 회장은 유진벨재단을 세웠던 24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국교회에 기회의 문이 열려 있다고 했다. 그는 “결핵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구명조끼 던지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했다. 이어 “아프리카 한복판이 아니라 바로 여기서 차로 몇 시간 떨어진 북녘땅에서 약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한국교회가 기억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안양=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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