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장애인의 삶은 비참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장애를 뛰어넘어 근대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저 사진들에 담긴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지체장애인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한하운, 정신병으로 고통받은 여성 작가 김명숙, 시각장애인 교육자 오봉래, 한센병으로 투병한 시인 한하운, 언어장애가 있었던 배우 김정숙(왼쪽 위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우 제공

저자의 이력부터 살펴보자. 정창권(52)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초빙교수는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2005)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2016) 같은 저서를 통해 한국사에 새겨진 장애인의 무늬를 선명하게 드러내온 학자다. 장애인의 날(20일)을 앞두고 출간된 신작 ‘근대 장애인사’ 머리말에는 그가 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적혀 있다. 고등학생 시절, 그는 한 장애인 시설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원장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자네는 비 온 뒤에 뭐가 생각나는가.”

“세상이 온통 맑게 변하여 제 마음마저 맑아집니다.”

“자네는 이곳에 있을 사람이 아닌 듯하네. 공부해서 꼭 대학에 들어가 자네처럼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해주게.”

그러면서 원장은 선물을 건넸다. 구한말에 출간된 성경의 4대 복음서를 묶은 책이었다. 저자는 원장의 뜻을 받들어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구를 거듭할수록 한국 장애인사(史)에는 예상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막상 장애인사를 연구하다 보니 역사는 때로 후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거 장애인의 역사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장애인사에서 그가 말하는, “알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달랐던 것”은 무엇일까. 독자들은 십중팔구 이렇게 넘겨짚기 쉽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그러니까 근대의 터널을 통과한 순간이 돼서야 한국사회에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가 생겨났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조선 시대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복지 정책과 사회적 인식은 선진적이었다”며 “(근대는) 편견과 차별, 배제로서의 장애인사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근거를 몇 개만 늘어놓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조선 시대 장애인은 음지에 숨어 사는 존재가 아니었다. “양지에서 비교적 떳떳하게” 살았다. 능력만 있다면 장애가 있어도 말직 관리가 정승까지 오르는 게 가능했다. 임금 중에도 장애인은 한두 명이 아니었고, 모든 왕대(王代)마다 장애인 관료 역시 한두 명쯤은 있었다. 국가는 장애인에게 각종 세금을 면제해줬으며 재난이 닥치면 최우선으로 장애인을 구제했다.

하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저자는 이 시기를 “장애 문제의 태동기”라고 규정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라에서는 장애인을 거론하면서 잔질(殘疾) 폐질(廢疾) 독질(篤疾)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장애를 고치기 어려운 고질병 정도로 여겼던 거다. 하지만 개화기부터 일본어 ‘후구샤(不具者)’를 그대로 가져와 불구자라는 단어가 쓰기 시작했다. 직역하자면 “~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뭘까.

“근대의 ‘불구자’라는 용어는 ‘기능’의 결여를 강조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뭔가를 갖추지 못한 사람, 즉 몸의 기능이 결여된 자요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조선 시대 장애인은 몸이 불편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면 더 이상 희망이 없는, 한없이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로 취급되었다.”

일제강점기 유일한 장애인 시설이었던 제생원 맹아부. 사우 제공

일제강점기에 장애인은 놀림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온갖 학대에 시달렸고 지독한 생활고를 견뎌야 했다. 가난 탓에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면서, 각종 산업재해에 노출되면서, 태형과 고문이 횡행하면서 장애인 수는 급증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일제의 정책은 유명무실했다. 장애인을 위한 공적 시설은 제생원 맹아부가 유일했다. 하지만 제생원은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1937년 1월 20일자에 게재된 매일신보 기사를 보자.

“현재 조선에는 장님이 1만1206명, 벙어리 1만300명이라는 다수의 가엾은 사람이 있는데, 이 중에 교육을 받고자 하는 자는 장님이 1064인, 벙어리가 2308인에 달해 있다고 하나 그들의 교육기관은 단 한 곳 제생원밖에 없으며, 수용력은 극히 적어서 100명 내외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을 낮잡아보는 분위기를 풀무질한 것 중 하나는 20세기 초반 지구촌을 뒤흔든 우생학이었다. 인간의 유전적 소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엉터리 이론 우생학 탓에 장애인은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존재”로 간주됐다. 우생학은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화시켰고 장애인을 사회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데 과학적 근거를 제공” 했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장애인은 적지 않았다. 책의 상당 부분은 이들 장애인의 업적을 일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전반적으로 동어반복 수준의 이야기가 없지 않지만 한국사에서 사각지대나 다름없던 장애인사를 면밀히 살폈다는 점만으로 각별한 의미를 띠는 신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한국이 100년 전 그때보다 얼마나 나아졌는지도 되돌아보게 만든다. 책의 끄트머리엔 저자가 장애인들을 향해 띄운 당부의 메시지가 실려 있다. 그는 말한다. “장애인들 역시 자신들의 역사적 전통과 능력을 다시금 확인하고 좀 더 당당하게 세상과 맞섰으면 한다”고 말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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