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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전석운]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장애는 극복해야 할 불편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나 시각… 비장애인의 편견이 걸림돌


정우성과 김향기가 출연한 영화 ‘증인’을 보고 새삼 자폐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달았다. 내가 아는 자폐란 원인 규명도, 치료법 개발도 되지 않은 장애의 한 유형이며, 자폐 진단을 받으면 급수에 상관없이 모두 중증장애인으로 분류된다는 정도였다.

자폐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과 상호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정서적인 유대감도 일어나지 않는 아동기 증후군으로 ‘자신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것 같은 상태’라고 하여 이름 붙여진 발달장애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 보듯 자폐아들과 소통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유일한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자폐 소녀가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게 밝혀지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게 만든다. 자폐 소녀 역할을 맡은 김향기는 법정 뒤쪽 벽에 붙은 시계의 초침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놀라운 청력을 갖고 있다.

비장애인들은 인식하기 어려울 만큼 먼 곳에서 들리는 대화를 녹음기를 튼 것처럼 재현해낼 정도로 기억력이 탁월하다. 변호사가 보여준 손수건을 한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손수건에 박힌 작은 물방울무늬가 몇 개인지 알아맞힌다. 판사들과 배심원들은 말이 어눌한 자폐 아이의 특별한 능력에 놀란다. 자폐 아이로부터 객관적인 증거능력을 갖춘 진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제가 깨진 것이다. 자폐 아이의 증언을 신뢰하게 된 2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한 1심과 다른 결론을 내린다. 2심에서 새로 나타난 증거는 없었다. 김향기의 진술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폐 아이를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사건의 진실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영화 속 김향기뿐 아니다. 우리 주변의 자폐 아이들 역시 특정한 감각이 매우 특별하게 발달한 경우가 많다. 청각이 극도로 발달한 자폐아가 있는가 하면 한번 들은 피아노 연주를 악보 없이 재현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사실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비장애인들의 편견일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또 다른 능력을 찾아내고 그걸 계발하도록 돕거나 존중하기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우리는 모두 장애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람들도 있지만 생후에 사고나 재난, 질병으로 장애인이 되는 사람들이 많다. 그보다 더 많은 경우는 노령으로 인한 장애인들이다. 나이가 들면서 시력도, 청력도, 기억력도 감퇴하면서 서서히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비장애인이라고 해서 우쭐댈 필요도, 장애인이라고 해서 위축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장애를 딛고 훌륭한 업적을 쌓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감동을 준다. 30여년 전 고압전류에 두 팔을 잃은 석창우는 의수에 붓을 끼워 온몸으로 그림을 그린다. 사고 전에는 한 번도 그림을 그려본 적 없지만 이제는 크로키 화법의 대가로 우뚝 섰다. 소치패럴림픽과 평창패럴림픽 폐막식에서 각각 퍼포먼스를 할 만큼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10년간 선수 생활을 했던 짐 애보트(52)는 ‘조막손’으로도 통산 87승을 거뒀다. 오른손이 뭉그러진 채 태어난 애보트는 손목만 남은 오른손에 글러브를 걸쳐 놓고 왼손으로 공을 뿌린다. 뉴욕양키스에서 활약하던 1993년 9월 3일에는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단 한 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는 ‘노히트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마지막 경기의 선발투수로 등판해 경기를 승리로 이끌고 미국에 금메달을 안겨준 팀의 에이스였다. 2012년에 펴낸 자서전(Imperfect: Improbable Life)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산다는 게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늘 공정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간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휠체어에 앉은 채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베토벤은 청각장애인이 되고 난 뒤 교향곡 ‘운명’을 완성했다. 장애란 극복해야 할 불편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나 시각이지 않을까.

전석운 뉴프로젝트전략팀장 겸 논설위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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