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며칠 전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을 만났다. 그는 회담 전망을 묻는 질문에 “미국 쪽 사정을 좀 알아봤는데 분명히 잘 안 될 겁니다”라고 단언했다. 건질 게 별로 없는 상황이어서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길을 걱정하는 말을 많이 했다. 그의 말대로, 회담은 별 성과가 없었다.

박 의원은 스스로 정치인이면서, 매일 정치판을 평가하고 코멘트하는 위치를 만들어냈다. 정치판을 읽는 눈이 9단이라면 대북 문제나 외교 사안, 법조계 동향, 정보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10단쯤 된다. 그만큼 사람을 많이 만나고, 공부를 많이 한다는 의미다. 히트어 제조기로 불릴 정도로 수첩에 현 정국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신조어를 잔뜩 메모하고 다닌다.

요즘 여의도에 돌아다니는 우스갯소리 중 하나는 “대한민국 아침은 박지원, 정두언(전 의원), 김현정(CBS라디오 진행자) 셋이서 연다”는 말이다. 실제로 박 의원은 라디오스타가 됐다. 그는 워낙 출연 요청이 쇄도해 거절을 많이 한다는 데도 하루에 많게는 6개까지 라디오나 TV 출연을 한다. 그가 출연하면 청취율과 시청률이 수직상승하기에 방송사들 사이에서 늘 섭외전쟁이 벌어진다. 그래서 친분이 있는, 죽 쑤는 진행자나 방송사 인사들을 도와주려고 ‘우정출연’도 많이 한다고 한다.

박 의원 같은 이가 있는가 하면 이런 의원도 있다. 주초에 자유한국당 중진 의원과 기자 몇이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눴다. 최근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당직에 기용한 인사에 대한 얘기였다. “그런데 그분 누구죠? 전(前) 의원인지 밖에서 데려왔는지 낯선 분인데 측근으로 기용했더라고요.”(기자) “어, 그분 전 의원 아니고 현역 의원입니다.”(의원) “아, 현역이었어요? 초선 의원은 잘 모르겠더라고요.”(기자) “아, 그분 재선 의원입니다.”(의원) “재선요? 그런데 우리가 왜 다 모르죠?”(기자) “그러니까요. 그게 우리 당 현실입니다.”(의원)

한국당만 그럴까.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잘나가는 집권당 의원인데도 어디서 뭘 하는지, 의원인지 아닌지, 정치를 하는지 마는지 알 수 없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대한민국의 마이크는 77세 박 의원과 ‘일식당 주인’ 정 전 의원에게 뺏긴 채 꼭꼭 숨어 있는 의원들 말이다. 그 흔한 SNS나 유튜브 활동도 전혀 하지 않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들 있으니 유시민의 알릴레오와 홍준표의 홍카콜라가 득세하는 것이다. 현역 의원들이 손놓고 있는 틈을 타 차명진 전 의원이나 이언주 의원 등이 독설로 매스컴을 타고 있는 게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이다.

현안에 침묵하고, 이슈 주도권을 남들에게 뺏긴 채 두문불출하는 현역 의원들을 21대 총선에서 또 뽑아야 할까. 지역구 일만 열심히 챙길 것이면, 자치단체장이 될 일이지 왜 국회의원이 됐나. 그런 침묵쟁이 의원들이 우리 사회나 정치 발전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지난해 이탈리아 총선에서 최다 득표로 연립정부를 구성한 정당인 오성운동은 의원을 딱 두 번만 할 수 있게 제한하고 있다. 그렇게 재선까지만 허용하니, 현역 시절에 정말 다들 열심히 활동한다. 소속 의원들이 하나같이 열심히 활동을 하니 국민들은 계속 그 당을 지지하고, 선거에서도 계속 돌풍을 일으키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국민들도 심판하겠지만, 우선은 각 당에서 총선 공천 때 ‘숨어 지낸’ 의원들에게 페널티를 줘야 한다. 반대로 사회적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국민과 소통한 의원들에겐 어드밴티지를 줘야 한다. 대외적 활동은 열심히 했어도 망언이나 과격한 언사로 노이즈 마케팅을 한 이들 역시 퇴출시켜야 한다. 국민은 일 열심히 하고 소통 잘하는 공복을 원하는 것이지, 소리 소문도 없이 의원직만 유지하고 있는 게으름뱅이를 원하지 않는다. 공천 칼날은 그런 이들을 제거할 때 가장 날카로워야 한다.

손병호 정치부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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