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영하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김중혁 박민규 김애란 같은 작가를 가끔 만나는데, 언어에 민감한 작가들과 얘기를 나누면 ‘내가 이 언어 안에 살아 있구나’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김애란은 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있던 당시 조교였다고 한다. 서영희 기자

이 책은 여행기인가, 자서전인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살인자의 기억법’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영하(51)가 산문집 ‘여행의 이유’(문학동네)를 냈다. 여행에 대한 사색과 문학적 자전이 어우러진 이 책은 우리를 삶을 조망할 수 있는 여행자의 자리로 안내한다. 그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여행은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고 말했다.

산 곳을 열거해보면 그의 삶이 여행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있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사직한 뒤 2008년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훌쩍 떠났다. 이어 캐나다 밴쿠버, 미국 뉴욕에서 살다 2012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부산에서 3년간 살다 지금은 서울 마포의 경의선 철로변에서 아내와 고양이를 기르며 살고 있는데 곧 떠날 거라는 예감을 하고 있다고 한다.

책은 오랫동안 구상해 온 것이다. “10여년 전부터 여행에 대한 책을 쓸 생각을 했다. 여행에 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며 “내 삶과 여행의 경험을 관통하는 내용과 형식으로 책을 구성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책은 여행의 이유, 여행과 소설의 의미, 인생과 여행의 유비 등을 다룬 산문 9개로 구성돼 있다.

첫 글 ‘추방과 멀미’는 사회주의에 대해 환상을 가졌던 젊은 날의 여행담이다. 그는 1990년 중국 여행에서 한 베이징대 학생의 기숙사를 방문한다. 대형 미국 지도를 방에 걸어둔 그 학생은 미국으로 유학을 갈 거라고 한다. 사회주의 체제에 사는 청년이 자본주의의 상징인 나라로 공부하러 간다는 것이 당시 그에겐 충격이었다. 그는 이 여행 후 대학원에 진학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만약 그때 중국 여행을 가지 않고 대학원에 가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까. “그땐 매년 경제성장률이 10%를 넘었다. 대기업들이 1000명씩 특채를 하던 때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나 같은 운동권 학생도 많이 뽑았다. 리더십이 있을 거라고 하면서. 나도 아마 대기업에 취직했을 것 같다. 한때 작가가 되고 싶었던 평범한 회사원이 될 수도 있었겠다”고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여행은 자신에게 별 가치가 없다고 했다. 작가는 “이 책에 기록된 여행은 기대와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었던 여행이다. 여행에서 과거와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이 내게 의미가 있다. 누군가의 안내로 매끄럽게 진행된 여행은 시간이 지나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작가 입장에서도 쓸 게 없지 않냐”며 웃었다.

여행의 관점에서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부분들도 흥미롭다.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담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올바른 여행자의 태도를 읽어낸다. 주인공이 위험에 처한 것은 그의 허영과 자만심 때문이고, 그를 위험에서 구한 것은 겸손이었다. 그가 스스로를 ‘노바디(nobody·보잘것없는 사람)’로 소개했을 때 외눈박이 거인을 따돌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인류는 이상한 종족이다. 인터넷 보급으로 직접 가지 않고도 지구 곳곳을 영상, 이미지, 글로 볼 수 있지만 계속 여행을 떠난다. 1995년 전 세계 5억2000만명으로 집계된 해외여행자는 2016년 12억4000만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작가는 “아무리 발달한 인공지능 로봇도 인간처럼 여행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여행은 인간의 고유한 본능일지 모른다”고 한다.

그는 여행의 요소로 환대를 꼽는다. 캄보디아 여행에서 가이드의 가족을 만나고 프랑스 여행에서 자신을 대신해 싸워주는 현지인을 만난다. 작가는 “여행의 이유를 캐다 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더라. 결국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가는 것 같다”고 했다.

소설 작업도 자신에겐 낯선 세계와 낯선 인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여행과 같은 경험이라고 여긴다. 책에는 첫 여행부터 최근 여행담까지 다 담겨있다. 예능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tvN) 패널로 여행했던 이야기도 있다.

작가에게는 작품도, 인생도 하나의 여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나는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지, 어떤 여행을 닮은 삶을 살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읽는 내내 무척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하지만 이 매력은 그럴 수 없는 이들에게 고통이라는 점에서 단점이 될 수 있겠다. 216쪽, 1만3500원.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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