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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에서] 부활절,절망을 딛고 희망을 노래한다

국민소득 3만 달러 불구 절망하고 소외된 이웃 많아… 이들과 함께 울고 소망줘야


희망의 부활절을 맞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의 희망이다.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는 절망인 것 같았지만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져 우리의 소망이 됐다. 2000년 기독교 역사는 온갖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부활 신앙을 붙잡고 절망을 이겨 왔다.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된 지 136년이 지났다. 일제 강점과 6·25 전쟁 등 수많은 질곡과 고난 속에서도 기독교는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전해 왔다. 부활하신 주님은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한 알의 밀알이 되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각자의 직분에 따라 열심히 일하면서 많은 부를 일으켜 왔다. 부요 속에서도 사치하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것을 기독교적 생활윤리로 삼았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자유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고도 경제 성장을 이뤄내 마침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었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5000만명 인구에 3만 달러 소득을 의미하는 50-30클럽에 가입했다.

6·25 전쟁의 폐허 속에 헐벗고 굶주리던 우리가 이제는 다이어트에 신경 쓸 정도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것은 우리의 노력만이 아닌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근면과 절약, 소명의식,공동체 정신 등으로 무장된 기독교적 가치관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우리 현실은 어떤가. 정치, 경제, 외교·안보를 비롯해 사회 각 분야에서 희망보다는 절망과 탄식 소리가 넘쳐난다. 젊은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여기 저기 나붙어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저출산과 인구 감소를 걱정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지만 전국 각 마을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가진 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부익부 빈익빈의 소득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우리 내부의 이념 갈등 또한 격화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마약과 성적 타락이 난무하고 생명을 죽이는 낙태가 허용되는 등 가치관의 혼란과 전도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절망하고 주저앉을 수는 없다. 부활절을 맞아 회개하고 기도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기를 기도한다. 부활하신 주님은 무엇보다 우리로 하여금 희생과 섬김의 낮은 자세로 사회적 약자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라고 말씀하신다. 내 이웃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고통과 아픔을 같이 느끼고 함께 울기를 바라신다. 계층이나 이념 등으로 나뉘어 갈등하지 말고 화합하라 하신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이 너무나 많다. 당장은 강원도 산불로 피해를 본 이재민부터 돌봐야 한다. 정신질환자에 의해 5명이 목숨을 잃고 13명이 다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진주 임대아파트 주민들도 각별한 위로와 관심이 필요하다. 심지어 주님은 범행을 일으킨 정신질환자를 우리 사회가 좀 더 일찍 치료하거나 돌보지 못한데 대해서도 회개하기를 바라신다.

많은 사람이 울고 있다. 많은 사람이 절망하고 있다. 모두 절망하고 있는 지금이 바로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일어서야 할 때다. 우리가 나서서 그들의 손을 붙잡아줘야 한다. 우리만이라도 나서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부활 신앙을 붙잡고.

신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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