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拷問)은 대상자로부터 원하는 정보나 반응을 얻어내기 위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반인륜 범죄인 고문은 대다수 국가에서 사라졌다. 우리나라도 헌법에서 고문을 금지하고 고문에 의한 자백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고문의 공포에서 벗어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0년대 군사정권 때만 해도 정보기관, 경찰, 군, 교정기관 등 국가기관들이 조직적으로 고문을 자행했다. 남산 지하실(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 남영동 대공분실(경찰), 서빙고 분실(보안사령부)은 없는 죄도 만들어내던 대표적인 고문 장소였다. 고문기술자들은 상부의 지시나 묵인 하에 이곳에서 민주화 운동 인사나 노동자, 선량한 시민들을 철저히 짓밟아 허위자백을 받아냈고 이를 통해 간첩사건, 공안사건 등을 조작해냈다. 72년 유신헌법과 5공화국을 탄생시킨 80년 10월 제8차 개정 헌법에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적시돼 있었지만 장식일 뿐이었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혹독한 고문을 견디기 어렵다. 대부분 평생 잊지 못할 기억에 시달리고, 불구가 되거나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는 질환을 얻은 경우도 있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갖은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말년에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다 2011년 64세란 한창 일할 나이에 세상을 떴다. 1987년 1월 같은 곳에서 고문을 받다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씨 등 고문 피해자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 20일 별세한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 전 의원은 80년 5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 재선 의원이던 2000년대 초반 고문 후유증으로 추정되는 파킨슨병이 발병했고 부축을 받고도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건강이 급속히 악화됐다.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 장례식 때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빈소를 지키던 모습은 그의 풍채 좋던 시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충격이었다. 야만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피해자들이 속속 세상을 뜨고 있는데 고문 가해자들은 이근안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처벌을 받은 경우가 거의 없다. 그들의 죄를 묻지도,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안타까운 죽음을 또 맞이하게 됐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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