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가정 2세들의 군입대가 본격화되면서 우리 군이 ‘다문화 군대’로 전환되고 있다. 2012년 다문화 가정 출신 첫 부사관이 배출됐고, 현재 3000명 넘는 ‘다문화 장병’이 복무 중이다. 저출산의 여파로 전체 병역자원은 줄고 있지만 다문화 장병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2022년에는 5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국방부는 2028~2032년엔 연평균 8000여명의 다문화 가정 출신 청년이 징병검사 대상자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다문화 장병을 우리 군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선언적 규정을 제외하고는 다문화 장병을 위한 맞춤형 정책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2010년부터 피부색 상관없이 병역의무

다문화 장병의 입대는 2010년 병역법 개정 이후 본격화됐다. 병역법 개정 이전엔 인종, 피부색으로 외관상 명백한 혼혈인은 5급 제2국민역으로 군복무가 면제됐다. 그러나 2010년 병역법이 개정되면서 1992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의 경우 피부색에 관계없이 한국 국적이면 모두 병역의무를 지게 됐다. 증가하는 다문화 가정 2세들의 병역의무 이행이 사회통합 차원에서 바람직했기 때문이다. 또 저출산이 심화되면서 병역자원 감소가 예측된 점도 작용했다.

국방부는 부대관리 훈령에 다문화 장병을 ‘장병의 부모 가운데 적어도 어느 한쪽이 대한민국이 아닌 외국 국적 출신인 장병’이라고 정의했다. 또 훈령은 “다문화 장병은 다른 장병과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지휘관은 다문화 장병의 인권이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해 다문화 장병의 권익을 강조했다. 발생할 수 있는 다문화 장병에 대한 차별을 막기 위해 국방부 훈령에 선언적 규정들을 마련한 것이다.

병무청은 2011년부터 다문화 장병의 군생활 적응을 위해 다문화 가정 출신 2~3명이 함께 입대하고 훈련과 내무생활을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입대 복무제도를 시행 중이다.

다문화 장병 현황조사 중단돼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이 2016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군의 다문화 장병은 2010년 51명, 2012년 223명, 2014년 400명, 2016년 776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이후 다문화 장병 현황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21일 “다문화 장병 현황을 별도로 챙기지 않고 있다”며 “조사를 하고 현황 자료를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차별적인 행위일 수 있어 따로 파악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부대관리 훈령에도 ‘병영 내 장병들에 대해 설문이나 별도 조사를 통해 다문화 장병 식별 활동을 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실제로 다문화 장병들은 자신이 다문화 가정 출신임을 드러내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갖고 있다. 다문화 가정 출신임이 알려지면 자신에게 동등한 대우나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을 수 있고, 동료들로부터 따돌림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다문화 군대로 가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기초적인 현황 파악 차원의 조사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다문화 군대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단순 현황을 파악하는 조사조차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다문화 장병을 위한 정책이나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현황에 대한 통계를 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군사회복지학을 연구해온 이윤수 영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다문화 군대로 가는 초창기이기 때문에 정책을 만들기 위한 기초 자료는 필요하다”며 “다문화 장병에 대한 상담을 통해 자료를 확보하고 선제적으로 실질적인 정책이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美 육군처럼 다문화 교육 강화해야

다문화 장병들이 군생활을 잘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휘관과 동료 장병의 인식을 개선시키는 다문화 교육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학교보다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고 스트레스가 많은 군에서는 다문화 가정 출신에 대해 단순한 차별을 넘어 따돌림이 일어날 소지가 많다. 군의 특수성 때문에 다문화 교육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석원정 성동외국인지원센터장은 “다문화 장병과 함께 복무하는 동료와 지휘계통에 있는 장교들이 문화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갖추는 게 긴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안서 육군종합행정학교 헌병학과장은 2010년 ‘국방정책 연구’에 게재한 논문 ‘다문화 장병 입영에 따른 병영환경 조성 방안’에서 미국 육군의 기회균등 프로그램(EOP)을 소개했다. 논문에 따르면 EOP는 인종 간 충돌에 대응해 만들어진 제도다. EOP는 인종이나 피부색에 관계없이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대우를 제공하도록 명문화했다. 또 부대 내에 기회균등 대표자를 둬서 지휘관을 보좌하게 했고, 주요 군사 교육 과정에서 EOP를 소개하도록 했다.

이를 응용해 우리 군도 부대 간부에게 기회균등 대표자 역할을 부여해 다문화 장병이 겪을 수 있는 차별이나 불공정한 대우 등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게 하고, 지휘관에게 관련 내용을 수시로 보고토록 하는 방안을 도입해볼 수 있다. 또 입영훈련이나 부대 정훈교육 때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시키고, 다문화 출신 장병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볼 필요도 있다. 진급이나 처우, 임무 부여에 있어서도 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인사정책에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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