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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전신 발명한 모르스는 화가


4월 27일은 전신(telegraph) 기술을 개발, 상용화에 성공한 새뮤얼 모르스가 1791년 보스턴 찰스타운에서 자신의 80년 첫 인생을 시작한 날이다. 이때는 우마차로 편지를 보내거나, 비둘기 발목에 쪽지를 달아 보내는 것이 주요 원거리 소통 수단이던 시대. 그 시절에 워싱턴DC에서 볼티모어 기차역까지 케이블을 깔고 “신이 어떤 일을 하셨는가”라는 첫 메시지를 순식간에 전달한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이후 10여년 사이 미국 내에 깔린 전신 케이블이 3만2000㎞에 달할 정도였다.

재미있는 것은 개발자 모르스는 전기공학을 전공한 과학도가 아니라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예일 칼리지를 졸업하긴 했지만 종교철학을 공부했고 이어 영국으로 건너가 왕립아카데미에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의 그림에 심취했고 고국으로 돌아와 생계 수단으로 붓을 들었다. 그가 그린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와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의 초상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 초상화가인 그가 원거리 소통 수단을 개발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이 그림 작업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 또한 역사의 예측불가함과 인연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1825년 그는 뉴욕시의 위임을 받아 워싱턴DC에 초상화를 그리러 뉴욕주 뉴헤이븐의 집을 떠나 있었다. 프랑스 귀족 출신으로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마퀴스 라파예트를 기리기 위해 그의 초상화를 그리던 중 모르스는 아버지가 집에서 우마차 편으로 급히 보낸 전갈을 받았다. ‘네 아내가 발작을 일으켰다’는 메시지. 황망해하던 중 다음날 부인이 ‘급사했다’는 전갈을 다시 받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아내는 무덤 속에 누워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모르스는 먼 거리에 소식을 빨리 전할 방법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게 되었고 이후 유럽 여행에서 돌아오던 중 보스턴에 거주하는 한 전기공학자를 우연히 배에서 만나 전신 기술 개발에 돌입하게 되었다. 임종도 못 보고 떠나보낸 아내에 대한 사무친 마음이 초상화가를 텔레그래프 개발자로 변신시킨 기묘한 인연인 셈이다.

모르스 부호와 전신 기술 개발로 유럽과 북미 사회에 엄청난 변화가 진행됐다. 로이터통신 창립자 줄리어스 로이터는 기존에 비둘기를 이용해 증권가 소식 등 경제 속보를 남보다 빨리 전하는 사업을 진행해오던 중 새로 등장한 전신 기술을 이용해 프랑스, 벨기에, 영국 등의 증권 시세를 신속히 전하는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어 세계 3대 통신사 중 하나로 꼽히는 로이터통신을 성장시켰다.

유럽과 북미대륙의 소통도 열흘 소요되던 것이 불과 몇 분 만에 가능하게 돼 사회 전 분야에 크고 작은 변화가 확산됐다. 미국 언론의 경우 신문 가격이 1센트이던 시절에 단어 하나당 몇십 센트씩 지불해야 하는 비싼 전신 사용료의 현실을 반영하듯, 자신의 신문이 전신을 활용한 기사를 실었다는 것을 생색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기사 첫머리에 가장 중요한 팩트를 전달하고 어떻게 해서든 기사를 짧게 쓰려는 저널리즘의 ‘본능’을 키우기 시작했다. 전신 사용료를 줄이기 위해 말이다.

현대 초고속통신 기술이 전신 기술과 직접 연관됐다 할 수는 없겠지만 전신 기술 개발 없이 곧바로 전화, 인터넷 출현을 상상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19세기 아내를 잃은 화가의 슬픔에서 21세기 초고속통신의 뿌리가 태동했다는, 좀 낯선 역사적 상상에 올라타게 되는 주말이다.

주영기(한림대 교수·미디어스쿨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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