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스스로 선교하게 한 것이 펜윅의 큰 공로”

기침, 펜윅 한국 선교 130주년 기념 학술대회

기독교한국침례회가 22일 대전 침례신학대 아가페홀에서 개최한 말콤 C 펜윅 한국 선교 13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제를 듣고 있다. 기침 총회 제공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총회장 박종철 목사) 시작을 연 말콤 C 펜윅의 선교 130주년을 맞아 그의 토착선교 및 북방선교와 이 과정에서 빚어진 순교 역사를 재조명하는 행사가 열렸다. 기침 총회가 22일 대전 침례신학대 아가페홀에서 개최한 ‘말콤 C 펜윅 한국 선교 130주년 기념 학술대회’다(국민일보 4월 9일자 34면 참조).

주 발제자로 나선 민경배 백석대 석좌교수는 “한국교회는 한국인 스스로 선교, 형성, 조직한다는 토착선교를 정착시킨 것이 펜윅의 가장 큰 공로”라며 “한국교회사상 그의 찬란한 공헌은 간도와 요령 지역에 대한 선교 투신”이라고 말했다. 당시 원산에 자리잡고 있던 펜윅은 국내 선교를 놓고 타 교파들과 갈등을 일으키기보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변두리나 외지로 눈을 돌렸다.

민 교수는 “펜윅이 산악지대 황야를 며칠씩 다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이름을 들어보았느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 대답을 듣고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을 선교하게 됐다”며 그의 선교 열정을 소개했다.

펜윅 선교사 부부(푸른선 안)가 사역하던 원산교회 교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 기침 총회 제공

민 교수는 “가장 참혹한 것은 1932년 무장 공산당 30여명이 종성동에서 교인과 비교인으로 갈라 앉힌 뒤 김영진 김영국 등을 학살한 일”이라며 “이들 형제와 몽골에서 전도하다 순교당한 이현태 등의 순교사화는 한국교회 국외 순교의 기념비”라고 말했다.

안희열 침신대 교수는 헨리 벤의 삼자원리를 중심으로 펜윅의 토착화 선교의 의의를 분석했다. 삼자원리란 자립(自立) 자치(自治) 자전(自轉)이다. 안 교수는 “펜윅은 침례교의 모태인 대한기독교회를 세운 지 8년 만에 현지인에게 위임하는 조치를 취했다”며 “특히 펜윅의 자전 선교는 ‘한국인에 의한 오지선교, 신앙선교, 북방선교’였다”고 규정했다. 1917년 만주 종성동교회에서 열린 대화회는 해외에서 개최된 최초의 총회였다. 이를 시작으로 28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1925년에는 길림 봉천 목단강 등으로 선교지역이 확장됐다.

‘대한기독교침례회사’를 쓴 김용해의 자료를 토대로 당시 재정의 궁핍함과 변방에서의 어려움으로 순교했던 이들의 역사도 소개됐다. 첫 순교자는 1918년 시베리아로 선교를 떠난 박노기 최응선 김희선 전영태 등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탔던 배가 풍랑으로 파선하면서 순교했다. 두 번째 순교자 손상열 목사는 만주 임강현과 압록강을 왕래하며 교회를 세우다 일본 헌병에 독립단 밀정으로 지목돼 총살당했다. 안 교수는 “이처럼 목숨도 두려워하지 않던 대한기독교회의 자전 사역자들 덕에 1906년 31개였던 교회가 1935년 200개로 늘었다”고 소개했다.

초기 북방선교를 떠나는 전도인 모습. 기침 총회 제공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기침 총회장을 역임한 조효훈 박사가 ‘펜윅의 문화’란 주제로 한국문화에 대한 펜윅의 이해와 실제 적용에 대해 발표했다. 이광수 박사의 ‘펜윅과 보스톤선교사훈련학교’, 이경희 박사의 ‘대한기독교회의 우태호 사건에 대한 재조명’ 등의 논문이 발표됐다.

박종철 총회장은 “이번 대회는 펜윅을 다각도에서 살펴보고, 그가 우리에게 남긴 신앙적 정신적 유산을 목회 현장에 적용하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우리 교회의 신앙과 선교 방향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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