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이 23일 의원총회에서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안을 진통 끝에 추인했지만, 동시에 회복하기 어려운 내상을 입었다. 바른정당계 좌장인 유승민 의원은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하겠다”고 했고, 이언주(사진) 의원은 의총 1시간여 뒤 탈당을 선언했다. 지도부가 명운을 걸고 추진한 선거제 패스트트랙 지정이 자칫 분당(分黨)으로 가는 패스트트랙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바른미래당은 약 4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의원 표결을 통해 가까스로 합의안을 추인했다. 표결 결과가 추인 찬성 12표, 반대 11표 단 한 표차로 결정된 것이 둘로 쪼개져 있는 당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이다. 유 의원은 의총이 끝난 뒤 어두운 얼굴로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바른미래당은 패스트트랙 문제에 대한 당론이 없는 당이 됐다”며 “이런 식으로 당의 의사결정이 이뤄진 것은 굉장히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의 현실에 자괴감이 든다. 당 진로에 대해 동지들과 함께 심각하게 고민하겠다”고 했다. 선거제 개편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것 자체에 반대해 온 유 의원이 탈당 가능성을 내비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바른정당 출신 당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성급히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탈당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바른정당 출신 의원 8인은 의총 직후 한 음식점에서 모여 ‘선거법 날치기 처리’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손학규 찌질’ 발언 등으로 당원권 1년 정지 처분을 받아 의결권이 없는 이언주 의원은 의총장 밖에서 의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해달라”고 당부했지만, 합의안이 추인되자 즉각 탈당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의원은 “지도부의 수적 횡포로 패스트트랙 합의안이 가결됐다”며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역사적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어 “저에 대한 당원권 정지라는 지도부의 꼼수로 12대 11이라는 표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참담한 분노를 느낀다”고 주장했다.

이준석 최고위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 의원의 한 표가 있었다면 12대 12 부결이다. 왜 그토록 지도부가 그의 당원권 정지에 목매었는지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당내에서는 패스스트랙 지정을 계기로 창당의 한 축인 보수 세력의 집단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당 출신 한 의원은 “정치개혁이라는 대명분의 측면에서는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면서도 “당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당의 융합’이라는 내부 문제였다”고 진단했다. 이어 “추인 강행으로 바른정당계의 이탈 가능성이 좀 더 높아졌다”며 “통합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만으로도 바른미래당은 존재 명분을 상실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패스트트랙 합의안 추인으로 바른미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여권으로 묶이는 것 자체에 대한 우려도 많다. 민주당 등 여권과 자유한국당의 양당 대결 구도가 심화되면서 오히려 제3지대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당내 양대 계파 사이 감정의 골은 루비콘 강을 건넜지만, 당장 분당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한 의원은 “현재로선 바른정당 출신들이 탈당을 해도 가려는 행선지의 셔터가 닫혀 있는 정세”라며 “그렇다고 무소속 의원으로 남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당 주도권 다툼을 이어가는 방향을 선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형민 심우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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