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북·미 간 일인듯 국제공조보다 대북지원 중시
비핵화 양보나 타협 없다는 당사자로서 역할 재정립해야
남북관계를 국제관계에 복종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지난 2월 말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no deal)’로 끝나자 현 정부는 더 이상 중재자를 자처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이전부터 미국은 ‘중재자’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며 ‘촉진자’ 수준의 용어를 양해하는 분위기였다. 이마저도 지난 11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바로 다음 날 북한이 공분을 불러온 ‘오지랖 발언’을 통해 중재자니 촉진자니 하지 말고 ‘당사자’가 되라고 한 다음부터는 빛이 바랬다. 호기롭게 ‘운전자’를 자처하다 ‘중재자’로, ‘촉진자’로 계속 몸을 낮추어 왔지만 도통 통하지 않게 되니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 용어상으로만 본다면, 우리가 ‘당사자’임을 일깨워준 북한 당국에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그러나 당사자로서의 우리는 상대방을 분명히 적시하고 상대방의 ‘당사자론’을 주체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북핵 위협의 당사자인 우리의 상대방은 북한이며, ‘제 정신을 가지고’ 북한의 비핵화에는 ‘티끌만한 양보나 타협’도 있을 수 없다는 ‘할 소리를 당당히’ 해야 한다. ‘민족의 일원으로서’ 북핵 위협 제거의 당사자라는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동시대 인류의 공동목표인 북한의 비핵화를 국제공조를 통해 달성해 나가자는 각오를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도 유엔의 결의에 따라 시행되고 있는 상대방의 제재에 ‘빛 샐 틈 없는’ 공조를 해나가야 하며, 제재위반에 대한 조치에도 적극 협력해야 한다. 경제협력 등 남북관계의 개선 역시 국제공조의 ‘입장과 의지에 공감하고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실제 우리 국민 스스로는 당사자임을 망각한 적이 없지만, 정작 현 정부는 현란한 정상회담이 이어진 데 고무된 탓인지 당사자의 입장과는 괴리를 노정해 왔다. 판문점선언의 국회비준이 여의치 않자 군사합의를 국무회의에서 서둘러 비준하면서 세간의 우려는 외면하였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정부의 납득할 만한 설명은 접하지 못한 반면 이 방면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안보약화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비핵화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데도 남북경협을 ‘대못 박기’ 하듯 서두르는 데 대해서도 선량한 국민들은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단순히 ‘퍼주기’ 비난이 아니라 핵 위협에 대한 제재를 우회하여 국제공조에 구멍을 낼 수 있다는 데에 대한 우려임을 정부는 유의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현 정부가 북한에 대해 유약하다는 비판에 대해 ‘적대와 대립을 이어가려는 세력’으로 몰아가는 듯 하는 것은 당사자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비핵화와 남북경협은 보조를 달리한다”는 식의 당국자 언급 역시 현 시점에서 당사자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필자는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그동안 경색된 남북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이는 것을 환영하면서 ‘평창 칼바람 속의 남북한 온기’가 해동과 더불어 훈풍으로 불어오기를 바란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필자는 반색하면서 서두를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남북관계를 개선시켜 나갈 것을 당부했다.

북핵 위협의 엄중한 현실을 감안하여 무엇보다 국제공조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에 집중해 달라는 취지의 글이었다. 북한의 의도를 냉철하게 파악해 볼 때 국제제재를 이완시켜서는 안 되며, 비핵화는 지난한 과제이지만 세계 인류가 그 목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힘들다고 지레 포기하거나 변질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에 비추어 본다면 그동안 현 정부는 운전자, 중재자, 촉진자를 자처하면서 비핵화는 마치 북·미 간의 일인 듯 대북 지원을 우선시하여 국제공조에 엇박자를 내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이것이 정책상의 미숙함만이 아니라 진영논리가 작용한 탓이라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아니기를 바라지만, 이른바 ‘진보진영’이 세례를 받은 수정사관에 입각한 한국전쟁 기원론이나 북한사회에 대한 내재적 접근론 등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무매개적으로 적용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데서 출발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위 어느 것 하나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기원론을 남침 아닌 북침 주장의 근거로는 물론 민족해방의 논리로 원용하는 것은 저술에 대한 몰이해이다. 북한 사회의 내재적 접근이 북한에 대한 이해는 돕겠지만 북한체제에 대한 동의나 찬양과는 무관함을 분명히 해 두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그간의 과정을 중간 결산한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과가 무위(無爲)가 아니라 의도적 비결정(non decision-making)임을 직시하고 당사자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 물론 좋지만 국제공조에 ‘복종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거꾸로 가면 북한의 비핵화는 그만큼 더 멀어진다.

김대환(인하대 명예교수·전 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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