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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의 인사이트] 상위 1%가 사는 법


“아들은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하면서 살고 싶어했지만 ‘음악 하면 배 고프다’는 얘길 듣고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어요.”

얼마 전 만난 대기업 회장 사모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아유, 말도 안돼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재벌가 자제가 무슨 돈 걱정이 있겠어요?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이 쌓여 있는데요.” 그것도 국내 5대 기업 안에 꼽히는 재벌 아들이 배 곯을까봐 하고 싶은 음악을 접었다니, 엄살이 좀 심하다 싶었다. 그러나 그는 단호했다. “아니에요, 우리 애들은 달라요. 자립심이 강해서 부모한테 절대 도움 받으려 하지 않아요.” 그러고보니 해군을 자원해서 간 그의 둘째 딸도 특이하긴 했다. 고교 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충당했다. 대학에 가서도 입시학원과 레스토랑 아르바이트 등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장학금으로 학비를 마련했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기사가 달린 외제차를 타고 세상과 담 쌓고 사는 일부 재벌가 자녀들과는 너무 달랐다.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에 운동화 차림의 그도 우리가 상상해온 재벌가 마나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몇 년 전 모임에는 커트머리를 하고 나타나 런던올림픽 무대 연출에 열변을 토하던 그였다. 어렸을 적 엄마가 항상 머리를 길게 땋아주고 공주 옷을 입혔는데 그게 싫어서 자신은 두 딸의 머리를 항상 숏커트로 해줬다고 한다.

밑창을 몇 번씩 갈아 신었던 해진 구두와 수십년 된 17인치 소형 TV, 낡은 소파 등이 사후 공개돼 감동을 줬던 재벌 회장. 그 며느리인 모 그룹 회장의 교육법도 남다르다. 유교적 가풍이 엄격한 대가족 사이에서 그림자 내조를 해왔던 그는 고교생 아들을 봉사모임에 자주 데리고 다녔다. 전자회사 사장인 아버지가 사다준 첨단 기기들을 어려서부터 접해 컴퓨터중독에 빠질 것을 걱정한 그는 아들을 봉사단체에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사는 사회를 알려주려고 했다. 퍼머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 채 검은 봉지에 사과를 한 가득 사들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사무실에 올라오거나 자신들과 함께 독거노인들을 돌보고 화장실 청소도 마다하지 않은 이 재벌 사모님의 정체가 봉사단체 회원들에게 알려진 것은 남편의 죽음이 TV를 통해 알려졌을 때다. 그제야 ‘내집 앞 눈치우기 운동’ 서명을 받을 때 왜 그 ‘청소하던 아줌마’가 가져온 종이에 낯익은 대기업 회장들의 이름이 줄줄이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재벌가나 유명 연예인들의 일탈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천민자본주의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항공사 회장 자녀들의 갑질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더니 최근엔 일부 재벌가 자녀들이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줄줄이 불려가고 있다. 갑작스레 인기와 돈을 거머쥐게 된 일부 연예인들은 돈으로 여성을 사서 성적 유희물로 취급하며 저질스러움과 천박함의 극치를 드러냈다. 소위 고위직 인사들의 행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건설업자의 추잡한 성접대 로비에 놀아난 전 법무부 차관이나 이를 묵인했다는 의혹을 받는 당시 정부 고위층의 패거리 의식, 대한민국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어 참담하다. 혼자 깨끗한 척하던 이 정부 인사들도 할 말은 없다. 부동산 투기를 뿌리뽑겠다는 국정철학에 반해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낼 수십억원 빚을 내서 치부(致富)에 열중한 전 청와대 대변인이나 법관 재직 시 1200여 차례 주식투자 행위를 남편이 한 일이라고 오리발 내미는 헌법재판관. 보통 사람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치는 그런 헌법재판관을 끝내 임명한 대통령까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정의와 진실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지 않은 듯 온 세상이 물욕과 탐욕으로 들끓고 있다.

물질과 쾌락의 노예로 사는 삶은 끊임없이 목마르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채워도 채워지지 않을 세상적인 것들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인생은 소모적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는데 인간은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물질과 권력을 쥐게 되면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오히려 가질수록 더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가복음 10:25)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복음성가 가사처럼 그릇되고 헛된 욕망을 버리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구도하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주님의 생수를 구해야 할 때다.

종교국 부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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