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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김의구] 입시 지옥, 수련 지옥

완충지대 없이 사회에 바로 뛰어드는 아이돌… 시련에 도전하고 쉼표 찍을 시간 줘야


30, 40년 전에는 고교에 입학하면 대학 진학을 위해 전력을 투구했다. 4시간 자면 시험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당5락’ 문구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잠을 이기지 못하면 부모들이 다그쳐 깨웠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2시간 넘게 보충수업이 있다. 여름방학에도 수업이 있었다. 냉방기는 물론 선풍기조차 없던 교실에 60명가량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책받침을 부치며 땀을 뻘뻘 흘렸다. 중학생 때부터 이런 과정을 시작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공부에 재능이나 흥미가 없다고 여기는 학생들은 물론 공부에 적응한 이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기간이었다.

요즘도 자율학습에 학원수강까지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초인적이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장소가 바뀌었을 뿐 ‘입시 지옥’은 여전하다. 학부모들도 온 힘을 다해 수험생들을 뒷받침한다. 수험생 부모들은 최소 1년은 죄인처럼 산다.

신문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아이돌 수련 과정도 혹독하다. 겉보기에 공부와 완전히 다른 길 같지만 실상은 입시 지옥과 꼭 닮은꼴이다. 하루 잠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노래와 춤, 몸 만들기에 진력해야 한다. 수련 외의 삶은 불필요하거나 2순위로 미뤄진다. 데뷔까지의 길이 좁디좁은데 빼어난 경쟁자들이 넘쳐 입시보다 경쟁이 더 치열하다. 과거에는 가수나 연예인을 한다면 도시락을 싸들고 말렸고, 가족관계를 끊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재능이 좀 보일라치면 부모들이 먼저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지원에 나선다.

입시 지옥의 끝은 잠정적인 해방이다. 지친 심신을 추스를 여유와 다채로운 경험을 쌓을 자유가 주어진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모색하는 준비기간을 거치면서 삶과 주변, 사회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수련 지옥’의 이후는 이와 크게 다르다. 데뷔 이후 곧바로 사회에 뛰어든다. 대학과 같은 완충지대가 없다. 노래나 춤을 자기 인생과 깊게 접목시킬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인성을 다질 기회가 없이 곧바로 프로가 된다.

성공한 아이돌은 스케줄이 빠듯해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거의 없다. 팍팍한 사회생활에서 부와 연예 권력을 쌓는 기법을 체득하고 기성 가치관에 쉽게 매몰된다. 잘나갈 때는 명예와 부 같은 큰 보상이 찾아오지만 그렇지 못하면 자존감의 상실, 고독과 불안이 엄습한다. 음지와 양지의 차이가 너무 현격해 연륜 짧은 프로들이 감당하기 어렵다.

최근 잇따르는 아이돌들의 일탈을 변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일으킨 이들 모두 30세 전후의 성인들이고 혐의도 중범죄다.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일탈에 일말의 책임도 없다고 자신할 수 없다. 그들에게 인기와 팬들의 환호 외에 자기 인생에 자부심을 가질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울 기회를 우리는 얼마나 줬던가. 아픔을 겪는 이들이 삶의 활기를 회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하는 게 비단 소속사들이나 부모들만의 몫은 아니다.

노래를 통해 타인을 감동시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동시대인들이 공감하고 따라 부르며, 인생의 주요한 길목에서 인상적인 한 장면으로 기억하는 노래를 내놓는 건 위대한 일이다. 시대를 뛰어넘고,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전 지구촌에서 인기를 누리는 것은 기적이라 부를 만하다.

요즘 가수들의 재능과 실력은 매우 뛰어나다. 젊은 가수들이나 신인들의 가요경연 프로그램들을 보노라면 넓은 음역, 풍부한 성량, 뛰어난 기교와 깊은 곡 해석까지 앞선 시대를 능가한다. 짧은 인터뷰를 통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깊은 음악관, 노래에 대한 각별한 애정, 삶에 대한 통찰들을 접하면 깜짝 놀라게 된다. 아이돌 수련 과정이 일찌감치 천부적 재능을 꽃피우게 하고 음악적 기교를 단련시킨 덕분들이다.

하지만 생명력이 긴 가수가 되려면 음지를 겪고 견디는 법을 익혀야 한다. 예능 프로로 쉽게 눈을 돌리거나 영리사업으로 딴주머니를 차기보다 음악적 시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선배들이 극렬한 가족의 반대 속에서 음악에 대한 갈망을 지켰듯 시련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음악 사이 숙명적 연결성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쌓인 내공은 노래의 깊이를 더하고 완성도를 높일 것이다. 우리는 재능 넘치는 어린 프로들에게 잠시 쉼표를 찍을 시간을 줘야 한다.

김의구 제작국장 겸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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