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이 24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문제로 항의하러 의장실로 몰려온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다른 일정 때문에 의장실을 나가려 하자 김명연 의원이 막아서고 있다. 이때 문 의장은 “멱살 잡으세요”라고 고함을 쳤다. 뉴시스

대한민국 국회는 24일 선거제·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추진 태풍에 휩쓸려 허우적댔다.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결사 저지를 부르짖으며 국회의장실을 점거했고, 문희상 국회의장은 쇼크 증세를 호소하며 병원으로 갔다. 이 와중에 입법부 수장의 여성 의원 성추행 공방도 빚어졌다. 국회에서 벌어진 후진적 촌극에 “자해 정치”라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당 의원들은 오전 8시40분쯤 국회 2층 본회의장 앞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연 뒤 3층에 있는 의장실로 몰려갔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에 대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 사·보임을 불허해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패스트트랙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오 의원은 이날 새벽 “소신을 지키기 위해 공수처 설치안의 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공개 글을 올렸다. 이에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사개특위 위원 교체라는 강수를 예고한 상황이었다.

한국당 의원들은 문 의장을 에워싸고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사·보임 요청을 허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사·보임 허용은 선거제와 공수처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워 대한민국의 헌법을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의장께서 그 장본인이 되려 하느냐”고 압박했다. 문 의장은 “이렇게 (의장을) 겁박해서는 안 된다. 의사결정은 내가 한다”고 응수했다.

이은재 의원이 “의장님 사퇴하세요”라고 소리치자, 문 의장은 “의원직 사퇴부터 하세요”라고 맞받아쳤다. 또 “국회가 난장판이다. 이게 대한민국 국회가 맞느냐”고 호통을 쳤다.

문 의장이 자리를 뜨려 하자 의원들 사이에서 “스크럼을 짜서 막으라” “사·보임 불허를 약속하고 가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명연 의원이 앞을 막자 문 의장은 “(내) 멱살을 잡으세요”라고 소리쳤다.

문 의장은 결국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의장실을 빠져나갔다. 이어 국회 의무실을 찾아 저혈당 쇼크 소견을 받고 인근 병원으로 이동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4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항의 속에 의장실을 나서려다 이를 막아선 임이자 의원의 양 볼에 손을 대고 있다(왼쪽 사진). 이후 한국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문 의장이 동료 의원을 성추행했다며 의장직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송희경 의원실 제공, 윤성호 기자

한국당은 충돌 과정에서 문 의장이 임이자 의원을 성추행했다는 주장을 내놨다. 문 의장을 가로막던 임 의원의 복부에 문 의장 손이 닿았고 임 의원이 “이거 손대면 성희롱”이라고 하자 문 의장이 “이렇게 하면 되냐”며 두 손으로 임 의원 볼을 만졌다는 것이다.

임 의원은 “심각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서 정서적 충격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했다. 한국당 여성 의원들과 대변인들은 연쇄 기자회견과 논평을 통해 문 의장의 사과와 사퇴를 촉구했다.

문 의장 측은 “전형적인 자해공갈”이라고 일축했다. 국회 관계자는 “자리를 빠져나가다 서로 신체가 닿았는데 임 의원이 성희롱이라고 주장하니까 의장이 볼 쪽으로 손을 가져가면서 ‘이러면 성추행이냐’고 반문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장외에서는 나 원내대표와 김 원내대표 간 공개 설전도 벌어졌다. 나 원내대표는 “김 원내대표가 회동 때 ‘민주당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며 패스트트랙 강행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을 막기 위한 한국당의 정치공작이자 이간질”이라며 반발했다.

이날 국회는 이런 난리통 속에 일과를 흘려보냈다. 한국당은 심야에도 의총을 열었고, 소속 의원들을 각 상임위원회 회의실에 배치해 밤샘 농성을 벌이도록 했다. 25일 예정된 패스트트랙 지정 회의 자체를 봉쇄하겠다는 뜻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우리 정치가 비정상이라는 방증”이라며 “지금처럼 극단과 배제의 정치, 자해 정치, 퇴행적 정치가 판을 친다면 여야 모두 국민 신뢰를 완전히 잃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호일 심우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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