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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전도 발자취 따라 여러갈래 고행의 대장정 엠마오 가는 두 제자 되다

[세계교회 점 잇기 <3>] 순례길 걷는 그리스도인

성 금요일이던 지난 19일(현지시간) '거룩한 섬'으로 불리는 영국 동북부의 린디스판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나무 십자가를 메고 걷고 있다. AP뉴시스

다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한 이후의 이야기다.

예수는 부활해 막달라 마리아에게, 그다음엔 길을 가던 두 제자 앞에 나타나셨다. 이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고 전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마가복음은 이 이야기를 짧게 전한다.(막 16:12~13)

누가복음은 좀 더 자세하게 적었다. 두 제자는 “이제 다 끝났구나” 하고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걸어가고 있었다. 믿고 따르던 선생님을 잃었으니 얼마나 낙담했을까. 엠마오까지 거리는 11㎞. 실의에 빠져 걷는 길이니 힘이 빠져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자기들이 그동안 보고 들은 일들에 대해, 예수의 가르침에 관해 토론했다. 의도하지 않은 디브리핑(debriefing)이었다. 두 제자는 주어진 임무와 경험을 자기표현으로 반복함으로써 공유하고 서로 격려했다.

스위스 풍경화가 로버트 쥔트(1826~1909)가 그린 ‘엠마오 가는 길’(1877년 작). 위키피디아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났을 때 제자들은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도 디브리핑에 합류했다. 실제로 이 과정은 두 제자에게 좌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예수의 말씀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 엠마오에 이르러 음식을 같이 나누려고 앉았을 때 제자들이 예수를 알아봤다.(눅 24:13~35)

순례길을 걷는 과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익숙한 시공간을 떠나 순례자들이 길 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목표는 목적지가 아니라 거기에 이르기까지 여정이다. 기독교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널리 퍼지면서 신자들은 예수시대 흔적을 찾아 의미를 되새기는 순례를 했다. 베드로가 박해받아 죽은 로마 역시 주요 순례지다. 바울의 전도 길을 따라가는 순례도 이어졌다.

9세기 초 스페인 콤포스텔라에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야고보의 유해가 남겨져 있음이 알려졌다. 산티아고(성 야고보)성당까지 많은 그리스도인의 순례가 시작됐다. 11세기 중반에 이르러 예루살렘, 로마만큼이나 콤포스텔라 역시 많이 찾는 순례지가 됐다. 이베리아반도와 유럽 각지에서 산티아고로 길이 이어졌다.

브라질 소설가 파울루 코엘류의 책 ‘순례자’(1987)가 인기를 끌면서 산티아고길(Way of Saint James)은 전 세계에 알려졌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자 사무국’에 따르면 지난해 32만7000여명이 이 길을 찾았다. 국적으로 봤을 때 순례자 44%는 스페인이고, 이탈리아(8.3%) 독일(7.7%) 미국(5.7%) 포르투갈(4.4%) 프랑스(2.6%) 영국(2.3%) 아일랜드(2.3%) 순이었다. 한국은 1.7%(5665명)였다. 43%(14만37명)의 사람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순례길을 찾았다. 전혀 종교와 상관없다는 응답도 9.3%(3만명)나 됐다.

순례길은 유럽 전역에 걸쳐 그물망처럼 엮여있다. 프란체지나길(Via Francigena)은 영국 남부 캔터베리에서 영국해협을 건너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 로마까지 이어지는 순례길이다. 990년경 영국 성공회 수장 캔터베리 대주교 시제릭(Sigeric)이 걸은 길이다. 매일 20㎞를 80번 반복해야 이를 수 있는 1700㎞나 되는 대장정이다. 2016년에만 4만 명의 순례자가 다녀갔다.


성올라프길(St. Olav Ways)이라고도 부르는 노르웨이 순례자길은 오슬로에서출발해 북쪽으로 도브레피엘을 지나 성 올라프가 묻혀 있는 트론헤임 니다로스 대성당에 이르는 640㎞ 길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생애와 흔적을 따라가는 루터길(Luther Trail)은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만스펠트 일대를 잇는 410㎞ 순례길로 2007년에 만들어졌다.

영국 동북부 노섬브리아에 있는 ‘거룩한 섬’ 린디스판은 썰물 때 뭍에서 걸을 수 있다. 7세기 오스왈드 왕의 요청으로 파송된 성 아이단이 린디스판에 수도원을 세우고 노섬브리아에 기독교를 정착시켰다. 1975년부터 해마다 고난주간이면 신자들이 나무 십자가를 메고 이곳을 찾는다. 스코틀랜드 등지에서 110~190㎞를 걸어 성 금요일에 린디스판으로 함께 들어가는 순례길이다. 지난 고난주간엔 100여명의 신자들이 순례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사는 리아 워머담씨는 20년 전 집에서 산티아고까지 4개월 동안 2500㎞를 혼자 걸었다. 2013년 성올라프길 643㎞도 걸었다. 워머담씨는 “길을 나서기 전 가졌던 모든 걱정은 첫 주에 다 녹아버렸고 단순한 생활 리듬에 곧 익숙졌다”며 “계획했던 곳에 도착해 하룻밤 묵으며 감사했고, 또 걸으며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늘 경이로웠다”고 밝혔다.

순례길은 걷고 싶다고 훌쩍 떠나기엔 녹록지 않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나 자신에게 더 귀 기울이기 위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멀리 떠날 필요는 없다. 걷기 좋은 계절이다.

박여라 영문에디터 ya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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