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획재정부가 내는 각종 보도자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예상보다 빠른 세계 경기 둔화’ ‘수출·투자 부진 지속’. 한국 경제를 둘러싼 여건이 생각보다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작년 예산보다 9.5%나 늘어난 올해 예산이 채 집행되기도 전에 서둘러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카드를 꺼낸 이유다. 공기청정기 보급에 마스크 보급까지, 쥐어짤 때까지 짠 흔적이 역력한 추경 사업명을 보고 있자면 나랏돈을 더 풀어서라도 경기가 주저앉는 상황은 막아보겠다는 정부의 절박함이 읽힌다.

그런데 재정정책의 다른 한 면인 조세정책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확장적 재정지출을 뒷받침할 조세정책에서는 정부가 자꾸 후퇴하는 것 같아서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만 봐도 그렇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초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콕 집어 축소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었다. 올해 일몰이 예정돼 있기도 했고, 이미 제도 도입 취지는 달성돼 더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런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를 통한 세수 확충은 이번 정부가 내세운 주요 재원 마련 방안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도의 혜택을 받는 직장인들의 반대여론에 밀려 홍 부총리 발언은 불과 1주일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 정부는 아예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3년 더 연장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그 과정이 얼마나 속전속결이었던지 제도가 왜 유지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빼고선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비단 신용카드 소득공제뿐만이 아니다. 문재인정부의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 실적은 대놓고 감세정책을 추진했던 이전 박근혜정부만 못하다. 전체 국세 수입 대비 감면 비율은 13.9%로 법으로 정해진 국세감면 한도(13.5%)를 넘어섰다.

이런 분위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시적이라던 유류세 인하 조치는 연장됐고, 6월부터는 증권거래세도 낮추겠다고 했다. 최근에는 가업상속공제 확대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홍 부총리는 가업상속공제의 사후관리 요건을 일부 완화하는 선에서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입장이긴 하다. 하지만 여당 내 관련 태스크포스(TF)에 속한 일부 의원들은 대상 요건을 완화하고 공제 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가뜩이나 각종 공제 때문에 실효세율이 낮다는 지적을 받는 상속세에 또 다른 퇴로를 열어주는 모양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 늘 따라다니는 말은 ‘경기 활성화’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세금을 깎아주면 그 여윳돈을 투자 또는 소비하면서 경기가 살아난다는 논리다. 과연 그런가. 캐나다의 철학자 조지프 히스는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이라는 저서에서 이 논리를 별 근거가 없는 믿음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아파트 주민이 공동으로 내는 관리비가 인하되면 각 주민이 그 돈을 다른 재화를 구입하는 데 쓰겠지만, 딱 그만큼 아파트 관리에 쓸 자금도 줄어든다. 공동의 수요가 개인의 수요로 대체될 뿐이고, 이를 감세의 영역으로 확장해봐도 마찬가지다. 물론 재화나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공동구매보다 개인구매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더 클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건 아니란 점에서 ‘감세=경기 활성화’ 등식은 참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이 제 기능을 못 할 땐 정부가 걷은 세금을 적극적으로 풀어서 경기를 인위적으로 부양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방향이 지금 정부가 지향하는 복지국가라는 목표에도 더 들어맞는다. 복지제도와 사회안전망 확충이라는 과제는 유례없이 빠른 지금의 저출산·고령화 속도, 과거와 같은 급격한 경제 성장을 더 기대할 수 없는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 정부가 예상했던 것보다 세수가 더 많았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까지 유난히 좋았던 반도체 호황 덕이었다. 반도체 업황 사이클이 조정기에 들어서고 세계 경기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행운이 계속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장기적으로 재정지출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부쩍 감세를 자주 거론하는 모습이 불안하기만 하다.

정현수 경제부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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