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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진창수] 자기 최면에 걸린 외교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인 27일 진보·보수 진영은 엇갈린 평가를 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변화를 국민이 체감할 것이라는 주장과 ‘북핵 폐기 플랜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국내에서 다투는 사이 비핵화를 둘러싼 동북아 각국의 외교전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궁지에 몰린 김정은이 중국에 이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국제 제재를 회피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북·러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러시아에 조정자 역할을 요청했다. 대북 영향력에서 중국에 밀린다고 생각해온 블라디미르 푸틴은 북한의 체제보장과 6자회담을 주장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할 뜻을 밝혔다. 러시아가 6자회담을 촉구하고 나섬에 따라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외교전은 더욱 복잡해졌다. 북·러 정상회담의 의미는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에서 국제사회 제재에 자력갱생으로 맞서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중·러를 등에 업고 미국과 장기전 태세로 갈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은 한국 정부에 대해선 맹비난을 퍼부으면서 미국의 압박기류에 변화가 없으면 군사적 도발을 포함해 대응카드를 꺼낼 수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문재인정부는 북한이 한국을 따돌리는 국면을 만들어가는 데도 별다른 위기감을 보이지 않는다. 국제관계에서 한국에 대한 협력을 확산시키지 못하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을 보더라도 한국 정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늘어만 가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는 회복이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문제는 동북아 각국이 진영 논리에 따라 치열한 외교를 전개하고 있는데 한국만 뒷짐 지고 있다는 것이다. 센카쿠열도 문제를 두고 심각한 갈등을 보였던 중·일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중·일 의 교류는 점차 정상화되면서 오는 6월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담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참석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중·일 관계 복원에 대해 한국 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압박을 완화하려는 전략적 타협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중국의 대일 접근은 트럼프 대책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중·일 타협의 흐름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2차 아베 신조 내각이 성립한 2012년 말부터 중·일 관계자들은 센카쿠 쟁점에 대해 비밀교섭을 지속했다. 중·일 ‘타협’안이 곧바로 합의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2014년 11월 처음으로 중·일 정상회담이 실현되면서 대립은 완화됐다. 아베 총리는 2017년 5월 중국이 개최한 ‘일대일로’ 포럼에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을 보내 시 주석에게 친서를 전달했다. 2018년 5월에는 아베와 시진핑 간 40여분의 전화회담을 통해 중·일 관계를 개선한다는 데 일치했다. 이처럼 중·일의 개선에는 양국의 위기관리를 둘러싼 전략적 타협이 존재했다.

중국이 대일 유화로 나온 이유는 2012년 이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강경 행동에 대한 역풍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남중국해에 대한 강경 태도가 미·일동맹, 미·일·호동맹을 강화해 중국 포위망을 형성시키게 된 결과를 가져왔다는 전략적 반성이 있었다. 중국 경제성장이 둔감하면서 중국 수뇌부는 일본의 이용 가치를 깨닫게 됐다. 중국이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경제협력이 필수불가결하며, 고령화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선진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아베도 중·일 개선이 동북아 질서를 안정시키고, 한·일 관계에서도 우위에 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 틀림없다.

중·일 개선을 단지 트럼프 현상의 일환으로 보면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현재로서는 미·중 대립이 격화되지 않는 한·중·일 관계는 지속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한국도 중·일의 관계 개선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일본과의 관계도 전략적인 고려를 우선해야 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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