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기준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를 돌파한 국가가 됐다. 특히 30-50클럽(1인당 GNI 3만 달러 이상-인구 5000만 이상)에 동시 가입됨으로써 선진국들 중에서도 이너서클 지위를 얻게 됐다. 하지만 자축하거나 선진국 위상을 즉각 체감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소득 불균형, 사회적 갈등, 삶의 질 문제 등 다양한 이유가 원인일 수도 있지만, 이미 여러 국가들이 3만 달러 문턱을 넘자마자 ‘3만 달러의 함정’에 빠진 것에 대한 학습효과가 주요 원인일 수도 있다.

2008년 3만5500달러, 3만2000달러를 달성한 스페인과 그리스는 2016년 기준으로 각각 2만6000달러, 1만8000달러까지 추락했다. 1992년, 2005년 3만 달러를 넘은 일본과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3만 달러의 벽에 갇혀 있는 현실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3만 달러 이후 20년간 장기침체를 겪으면서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소득 3만 달러에서의 고배를 맛보게 했을까. 공통 키워드가 있다면 ‘포퓰리즘’이다. 스페인은 2007년 1인당 소득 3만 달러 돌파와 동시에 공공지출을 큰 폭으로 확대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은 표심을 얻기 위해서 채권을 찍어내 사회간접자본 등 공공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17개 지자체는 200조원이 넘는 부채로 경쟁하듯 공항, 학교, 양로원 등을 지었다. 이러한 선심 정책은 궁극적으로 비행기를 한 번도 못 띄운 ‘유령공항’ 7곳을 만들어 낸 오명을 남기게 됐다.

일본의 경우, 3만 달러에 도달한 순간 세금 퍼붓기 프로젝트가 1990년대 내내 계속됐다. 공항, 도로, 철도를 짓는 SOC사업이 주류였고 사업 규모를 놓고 보면 114조엔(약 1200조원)에 달하는 액수였다. 곧 흉물 덩어리 공공시설이 속출했고, GDP 대비 국가채무가 240%로 올라간 세계 최악의 적자 국가로 변질됐다.

놀라운 현실은 이러한 소득 3만 달러 시대의 ‘평행이론’이 2019년 대한민국에서도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지난 1월 29일, 새만금국제공항, 남부내륙철도 등 23개 공공사업에 24조1000억원을 투자하고 예비타당성(예타)조사를 면제하는 정책 결정을 표방함과 동시에 수차례 검증을 통해 결정된 김해신공항 추진계획을 재검토하고 가덕도신공항을 재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문제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걸쳐 유례없이 다양한 검증방식을 통해 김해신공항으로 최종 결정된 사안이었다. 심지어 2016년 5개 광역자치단체가 제3자인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을 공동으로 선정, 어떤 결과가 나와도 수용하겠다는 ‘신사협정’을 맺은 초유의 예타조사 과정을 통과한 결과물이었다. 그런데도 2020년 총선을 1년여 앞둔 상황에서 다시 결정을 되돌리겠다는 부산광역시와 부·울·경 검증단의 최근 행보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의 행태이고, 수차례 진행됐던 예타조사와 광역자치단체장들의 협약을 무색하게 만드는 집단행동이다.

무엇보다도 예타조사를 통해 가덕도신공항은 최소 10조원 이상 예산이 들어가는 경제성이 떨어지는 공항으로 검증됐다. 반면 김해신공항은 4조원으로 최대 380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입지조건, 접근성 및 경제성 등 여러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돼 최종선정됐다. 꾸준히 제기됐던 김해신공항의 안전문제는 V자 활주로로 변경돼 김해공항 북쪽의 주변 산들과의 충돌위험을 제거했으며 자연스럽게 소음문제도 V자 활주로 변경 설계로 최소화하게 됐다.

세계에서 제일 조용한 ‘유령공항’으로 BBC뉴스에 소개됐던 양양공항, 활주로에 고추를 말리는 공항으로 유명해진 무안공항, 개항조차 못해 비행교육훈련원으로 전락한 울진공항, 모두 국민의 혈세를 우습게 여기는 포퓰리즘의 부산물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 1500년 전 인구 17만의 소국 베네치아공화국이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페카토 모르탈레(peccato mortale)”라는 국가운영방침이 있었다고 했다. ‘용서받지 못할 죄’란 뜻인데 그 두 가지의 죄목은 첫째, 공무원이 국가예산을 낭비하는 죄, 둘째는 기업인이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죄다. 페카토 모르탈레가 횡행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어느덧 소득 3만 달러 시대의 평행이론이 우리에게 엄습하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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