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톡!] 100년간 잊혀졌던 ‘상해한인교회’ 찾은 결정적 단서

‘베이징루 18호’와 ‘상해현성상조계전도’

1884년 제작된 상해현성상조계전도의 전경. 황푸강 상류 왼쪽의 청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조계지다. 이혜원 객원교수 제공

1919년 상해한인교회(중국어표기 上海鮮人敎會)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굵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독립운동가들에겐 비밀회의 장소였죠. 물론 복음의 집이었습니다.

100년 동안 드러나지 않던 교회 위치가 국민일보 보도(4월 12일자 33면 참조)를 통해 베일을 벗었습니다. 단서라곤 ‘베이징루 18호’라는 주소가 유일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주소체계가 바뀌면서 1919년 주소는 무용지물이었죠. 게다가 프랑스 조계지였던 남경루에 교회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도 혼란을 더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월부터 수집한 단서들은 모두 영·미 공동조계지를 향했습니다.

그러다 조지 F 피치 선교사와 몽양 여운형의 관계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피치 선교사는 미국북장로교 파송 중국 선교사로 상하이에서 활동하며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했던 인물입니다. 몽양은 상해한인교회의 전도자였죠. 피치 선교사는 한인들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그는 ‘미화서관’이란 출판사를 운영했습니다. 둘의 우정은 상해한인교회가 미화서관을 빌려 사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미화서관의 주소도 베이징루 18호였습니다.

이혜원 연세대 신학과 객원교수가 4월 초 한 장의 사진을 찾아냈습니다. 미화서관 앞에 교회가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로리기념교회’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1919년 상해한인교회는 미화서관 마당에 있던 이 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소가 같았던 거죠.

모든 의문이 풀리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 주소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지도가 필요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베이징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 1900년대 초반 이후 큰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도만 찾으면 정확한 위치를 찾을 가능성이 컸죠.

일본과 중국의 사료를 뒤지던 이 교수가 결국 1884년 제작된 상해현성상조계전도(上海縣城廂租界全圖)를 입수했습니다. 이 지도엔 베이징루가 기록돼 있었고 미화서관이라는 건물 이름이 한자로 뚜렷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지도엔 당시 큰 건물의 이름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습니다. 1919년 상해한인교회는 이 지도가 발견되면서 정확한 위치를 드러낸 것입니다. 현주소는 베이징동루 280호, 1931년 중국 염업은행이 세운 7층짜리 석조건물이 서 있습니다.

위치 확인을 계기로 상해한인교회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일본 외교사료관엔 “임시정부가 1919년 9월 상하이 하비로에 청사를 마련한 뒤에도 베이징루 18호에 비밀인쇄소를 설치했고 대규모 회의나 행사도 그곳의 예배당에서 열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1919년 상해한인교회가 독립운동사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 조사하는 일, 우리에게 맡겨진 새로운 과제입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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