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맞서는 행위가 투쟁이다. 상대를 이기기 위한 싸움으로 소수자나 약자의 최후의 방편이다. 언어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폭력을 제거하고자 법을 제정하는데 이것이 정화된 폭력, 즉 권력이라고 했다. 경찰은 사회구성원에, 군대는 다른 공동체에 폭력을 행사하도록 만든 정의의 폭력 메커니즘이다. 감옥도 비슷하다. 권력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사회공동체 개개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일제강점, 공산 및 군사정권의 독재는 개개인이 동의하지 않았다. 따라서 개개인은 폭력에 대항하고자 배수의 진을 치는 투쟁이 필요했다. 보복 폭력의 투쟁, 거역하는 저항 등으로 맞섰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하다. 힘의 불균형에 따른 예측 가능한 결과임에도 이에 맞서는 것은 정의의 실현을 위한 희생을 각오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 조수옥(1914~2002)의 투쟁은 수치와 치욕까지 감내해야 했다. 신여성이었던 그는 1940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면서 체포돼 해방되던 해까지 5년간 옥살이를 했다. 북부산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그는 “마룻바닥에 배설물이 있고 마룻바닥 전체가 구더기로 덮여 몸을 타고 기어올랐다”며 “끼니때면 꽁보리밥 뭉텅이가 나오는데 구더기와 생김새가 같아 구역질이 났다”고 회고했다. 경남도 경찰국으로 이송할 때 수갑과 포승을 채우고 전차에 실려 끌려갔다. 구더기 터져 묻은 옷과 땀과 오물로 범벅된 몰골, 산발한 머리…. 어떤 승객이 “저 여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 꼬락서니인가” 조롱했다.

그는 평양형무소로 이감됐다. 모포가 판자처럼 얼어붙는 추위를 견뎌야 했다. “이보다 견디기 어려운 게 뭔지 아십니까. 굶주림도 추위도 아니고 산발한 머리에 대소변마저 제대로 할 수 없는 여성으로서의 수치였습니다. 저항도 투쟁하겠다는 정신도 내던지게 만드는 거죠.” 그런데도 그는 끝까지 투쟁해 이겨 출옥했다. 많은 사람이 옥사하거나 출옥 후 후유증으로 병사했다. 출옥 후 그는 마산에 고아원을 세웠다. 국민훈장 일가상 용신봉사상 유관순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해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고인의 노고를 치하해 화제가 됐다.

지난 29일. 국회 패스트트랙법안 저지 투쟁 과정에서 다쳤다는 자유한국당 두 의원이 목에 깁스하고 당 비상의원총회에 나타났다. 그들은 투쟁에 따른 참혹을 경험한 듯하다. 이 ‘웃픈’ 현실에 좀 난감하다. 수치스럽지 않길 바란다.

전정희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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