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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에서-배병우] 내년 총선 ‘북한 구원투수’설

北, 내년 3월쯤에 남북정상회담 응할 것… 진보정권이 ‘식물 정부’ 되는 건 원치 않아

한반도 비핵화·평화프로세스에 모든 정치적 자산을 걸다시피 한 문재인정부에 북한의 표변은 뼈아프다.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다음날인 지난달 12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정연설을 통해 “남한 당국은 좌고우면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게 아니라 같은 민족의 편에 서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한국 정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판문점선언 1주년인 27일에도 북한의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남한 당국은 과거의 체질화된 도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북남 관계를 판문점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는 위험한 장난질에 계속 매달리고 있다”면서 “지난 22일부터 2주일 동안 남조선 군부가 미국과 함께 벌이고 있는 연합 공중훈련이 바로 그 대표적 실례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조평통은 “남한 당국이 미국과 함께 우리를 반대하는 군사적 도발 책동을 노골화하는 이상 그에 상응한 우리 군대의 대응도 불가피하게 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북한의 이런 반응은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딱 맞는다. 잇따른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로 러시아, 중국까지 경원시해 철저한 외교적 고립에 빠진 북한을 구해준 게 문 대통령이다. 지난해 초 평창 동계올림픽 초청을 통해 체면을 살려주면서 미국과 대등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줬다.

북한의 대남 비난 행보에 대해 해외 한반도 전문가들도 매우 부정적이다. 북한 전문가 에이드 포스터-카터 영국 리즈대 명예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두 차례 주선해준 데 대해 감사는 못 할망정 문 대통령을 ‘다 쓴 수건’처럼 치워버렸다”고 비판했다.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 기고문 ‘북한의 한국 무시가 왜 불공평하고 어리석은가’에서다. 그는 한국을 폄훼하는 북한의 행태와 관련, “문 대통령 얼굴에 침을 뱉는 것으로, 짧은 생각에서 나온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그는 “김정은은 한국의 선의가 마치 수도꼭지처럼 원할 때 틀기만 하면 나오는 것으로 아는가”라고 질타했다.

정부는 북한의 배은망덕한 행태에 대해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라의 격을 생각해서 점잖게 나무라기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지만 묵묵부답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남북화해 기조를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조심성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대화가 중단되면 큰일 나는 것처럼 걱정하는 ‘대화 만능주의’ 때문이라는 분석이 맞을지도 모른다. 북한의 ‘행패’는 도를 더해가는데 한국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볼썽사나운 모양새가 지속됨에 따라 문재인정부의 정치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무반응은 내년에 크게 도움받을 것도 고려한 ‘심모원려(深謀遠慮)’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북한이 내년 4월 15일 총선을 앞두고 경제난 등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 정부의 구원투수로 나설 수 있다는 설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은 한국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한다. 문정부가 총선에서 패해 사실상 ‘식물 정부’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면서 “내년 초 대화 분위기가 조성돼 3~4월쯤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북한은 지금 문정부와 각을 세우지만 보수세력이 집권하는 등으로 해서 남북 화해 기조가 물거품되는 것은 그들의 국익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는 것이다. 국책 안보연구소의 한 연구위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북한이 현 정부가 정국 주도권을 잃지 않도록 남북 정상회담에 응하는 정도는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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