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종로교회 목회자와 성도들, 경기·충청 만세운동을 이끌다

[3·1운동 100주년과 한국교회] <2부> 독립운동과 한국교회 (13) 수원종로교회의 독립운동가들

수원 화성행궁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교회 전경. 수원종로교회 제공

경기도 수원 일대는 전국에서 3·1운동이 가장 치열하게 일어났던 지역 중 한 곳이다. 1919년 3월 1일 화홍문 방화수류정 부근에서의 첫 거사를 시작으로 그해 4월 15일까지 크고 작은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기독교인 등 종교인을 중심으로 학생 농민 기생 등 여러 계층의 민중들이 참여했다.

그 배경엔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이자 교육운동가였던 김세환(1888~1945) 선생의 활약이 있다. 수원 최초 개신교회인 수원종로교회 권사였던 그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 민족대표를 규합하고 수원의 만세운동을 독려했다.


그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독립·민족운동을 이끈 수원의 걸출한 인물들은 대부분 수원종로교회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다. 민족운동가 이하영(1872~1952) 목사와 항일투사 임면수(1874~1930) 권사, ‘수원의 유관순’ 이선경(1902~1921) 성도가 대표적이다.

수원 명문가 출신으로 한학을 공부한 이하영 목사는 수원종로교회 설립 당시인 1901년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이 교회 초창기 교인인 그는 이듬해 미감리회 선교사들과 임면수 등 수원 지역 유지들과 협력해 매일학교를 세운다. 이 학교는 수원 지역 독립운동가의 요람이었던 삼일학당과 매향학교의 전신이다. 그는 이곳 초대 학당장이자 한문 교사로 활동하면서 교회 보조사역자로도 활동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엔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는 등 수원의 민족운동을 주도했다. 1912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타지역 교회로 발령돼 수원을 떠나는데 19년엔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3·1운동을 주도해 평양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일제에 의해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지목돼 일경의 감시 속에 강릉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 31년 수원종로교회에 원로목사로 돌아와 52년 별세했다. 3·1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2008년 건국포장에 추서됐다.

항일투사이자 민족계몽운동가인 임면수 권사는 이 목사와 함께 수원종로교회 초창기 교인 중 한 명이다. 1896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이듬해 민족저항운동의 중심지인 상동교회의 ‘엡워스(Epworth) 청년회’에서 애국지사들과 교류한다. 이때 전덕기 목사를 만나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다. 독립협회 해산 이후 고향인 수원으로 돌아와 수원종로교회에 엡워스 청년회를 세우고 매일학교 설립에 참여한다. 항일단체인 신민회 경기도 책임자를 지내다, 경술국치 이듬해 전 재산을 삼일학당에 기부하고 항일투쟁을 위해 만주로 망명한다.

이후 만주 합미허에서 임시정부와 신흥무관학교 유지비 조달 및 독립군 양성에 진력하다 21년 밀정의 고발로 체포된다. 수감 중 고문으로 전신이 마비되면서 병보석으로 1년 만에 출옥한다. 22년 수원으로 돌아와서도 민립대학 설립 운동에 나서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했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30년 별세한다. 80년 대통령 표창, 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2009년 대전 현충원으로 이장됐으며 2015년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 선생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조직됐다.

김세환 권사는 이 목사와 임 권사가 교회를 활발히 이끌 당시 청소년으로 이들 밑에서 독립운동가의 꿈을 키웠다. 일본 주오대에 유학한 뒤 삼일여학교 학감을 지내다 민족대표 33인인 박희도 YMCA 간사의 소개로 3·1운동 모의에 참여한다. 여기서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 민족지도자를 모으는 역할을 맡아 이 지역의 만세운동 주동단체를 조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년 3월 1일 서울로 올라가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다 13일 체포됐다. 이 일로 1년 6개월여의 옥고를 치렀고 이후 신간회 수원지회장 등을 지내며 민족운동을 지속했다. 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수원 산루리(현 팔달구 중동) 출신인 이선경 성도는 숙명여학교 학생으로서 서울의 3·1운동에 참여했다. 수원종로교회 교회학교 교사로 활동했던 그는 김 권사를 도와 대전 충주 안성 등지에 비밀문서를 전달했다. 이듬해 자신과 같은 수원 통학생이자 교회학교 교사였던 최문순 임순남 등과 구국민단에 가입해 구제부장으로 활발히 독립운동에 나선다. 그해 일경에 체포돼 8개월간 구금됐는데 혹독한 고문으로 석방된 지 9일 만에 순국했다.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강성률 수원종로교회 목사가 지난 26일 수원 팔달구의 교회 담임목사실 앞에 걸려있는 옛날 신문기사 속 이하영 목사를 가리키고 있다.

이 밖에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최성모 목사, 신사참배에 항거한 유부영 전도사 등 여러 애국열사가 수원종로교회를 거쳤다. 이 교회 24대 담임인 강성률(49) 목사는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걸고 전 재산을 바치면서 독립운동에 뛰어든 신앙 선배의 애국적 행보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며 “교회 내에 역사관 등을 세워 그 뜻을 계승하며 다음세대의 신앙과 민족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수원=글·사진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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