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는 2009년 3월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고쳤다. 4대강 사업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기 위해서였다. 명분은 재해 예방 효과였다. 한반도대운하와 달리 4대강 사업은 대선 공약이 아니었다. 당시 여당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국회에서 관련법을 통과시켰다. 4대강 사업은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돼버렸다. 2015년 문재인 야당 대표는 “이명박정부가 4대강 사업 강행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를 생략시킨 결과는 환경 재앙과 국민 혈세 22조원 낭비였다”고 비판했다. 경제성 검토와 환경영향평가 등이 졸속으로 진행된 정황은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발표된 감사원 감사 결과로 명백해졌다.

문재인정부 들어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 기획위원회’는 4대강 주요 보 5곳 중 3곳의 해체를 제안했다. 환경 복원이라는 가치를 제외하고도 보를 유지해 누릴 수 있는 편익이 비용보다 적어 해체가 더 경제적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축적된 실측 자료를 토대로 평가했다고 설명했지만 바로 졸속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해체에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충분한 손익계산과 수질·생태 변화, 홍수·가뭄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10년 이상의 조사가 필요한데 그 과정이 생략됐다는 지적이다. 역시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답답해한다. 밀실작업으로 급조된 토목공사이자 ‘강 죽이기 사업’이라는 결론이 나 있는데 뭘 또 따져야 하느냐고 말한다. 빠른 결정이 유지관리 비용을 한 푼이라도 줄이는 길이라고도 했다. 일부는 “이런 논리라면 일제 36년의 과오를 바로잡는 데 36년을 들여야 한다는 얘기와 다를 게 뭐냐”고 되묻는다.

다행히(?) 환경부는 신중하다. 시한을 정해놓고 서두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국가물관리위원회 논의와 보별 검토 작업을 거쳐야 해 실제 해체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언론사 간담회에서 “4대강 사업의 핵심 논란은 성급한 결정·추진에서 나왔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의견수렴을 하고 법이 요구하는 절차를 철저히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치인이나 정당이 정권을 잡거나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했다고 해서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백지수표를 국민으로부터 건네받은 것은 아니다. 공익을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또는 사회적 쟁점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사업을 추진하거나 제도를 변경하고자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게 절차적 정당성이다.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실질적 정의’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이 정해놓은 절차를 지켜야 하고, 관련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추진 과정에서 “실정을 몰라 반대한다” “정략적으로만 접근한다”고 상대방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집권 기간 내에 과업을 마무리 짓겠다는 욕심으로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소홀히 한다면 분명히 화가 생긴다. ‘비선조직에 의한 국정농단’이라는 최악의 절차적 정당성 무시 행태는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

패스트트랙을 놓고 몸싸움과 막말, 고성으로 난장판이 된 국회를 보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중대한 위협에 직면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범여권은 국민 지지와 의석수가 일치하지 않는 선거법을 고쳐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누가 봐도 꼼수인 사개특위 위원 사·보임을 밀어붙였다. 야당은 ‘동물 국회’를 추방하겠다며 자신이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보란 듯이 무시하고 국회 복도에 드러누웠다. 양측 모두 명분만 부르짖을 뿐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충돌 이후 기존 지지그룹을 재결집하는 효과를 보고 오히려 고무된 표정이다. 그러나 목표가 선이니 만큼 수단과 방법은 잠깐 눈감아도 된다는 정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뿐이다.

한장희 사회부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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